[6·4지방선거 후보검증⑥/대구시장]

  • 입력 1998년 5월 17일 20시 10분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이는 대구에는 4명의 시장후보가 나설 전망이다.

직업관료출신인 자민련 이의익(李義翊), 한나라당 문희갑(文熹甲)후보와 국민신당 유성환(兪成煥), 무소속 권만성(權萬晟)후보다. 현재까지는 현시장인 문후보가 독주하는 가운데 전시장인 이후보가 다소 힘겨운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 자민련 이의익후보 ▼

말단서기보로 공무원생활을 시작, 대구시장과 국회의원까지 지낸 직업관료출신 정치인. 학창시절에는 공부보다 싸움을 더 잘한 것으로 유명하며 관료출신답지 않게 ‘통이 큰 기분파’라는 평을 듣고 있다. 경북 안동군 도산면 출생으로 일제시대 신간회 경북지부대표로 독립운동을 한 부친을 따라 만저우(滿洲) 상하이(上海) 서울 등지를 오가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서울에서 경복고를 다니다 1학년때 경북고로 전학했고 졸업은 영천고에서 했다. 대학은 성균관대를 다니다 국학대 경제학과로 옮겨 졸업, ‘학력시비’가 종종 제기된다. 그는 4·19 학생운동에 연루돼 강제징집을 당했다가 제대 후 대학을 옮겼다고 해명한다.

고시출신들이 즐비한 경제기획원에서 서기보로 출발한 그는 사무관 승진시험에서 전국 2위로 합격한 이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30대에 서울시 통계과장과 인사과장 총무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칠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 능력에다 당시 구자춘(具滋春)서울시장이 끌어줬기 때문이라는 후문.

그는 이어 창원 마산시장과 경남 경기부지사, 대구부시장을 거쳐 92년 민자당 내무전문위원으로 일했고 93년 김영삼(金泳三)정부 출범과 함께 대구시장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그는 9개월만에 시장직에서 중도하차했다. 고속전철 대구구간의 지상화를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95년 자민련후보로 대구시장선거에 출마, 2위로 낙선한 뒤 대선을 앞둔 지난해 11월 한나라당으로 옮겼다가 최근 다시 자민련으로 복귀하는 등 잦은 당적변경이 그의 약점. 그는 ‘대구경제의 회생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여당인 자민련후보를 뽑는 것’임을 집중홍보하는 선거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 한나라당 문희갑후보 ▼

5, 6공 정권에서 예산문제를 다뤄온 정통 경제관료출신 정치인.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 출생. 그의 집안은 원래 부농가문이었으나 일제를 거치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그는 넉넉지 않은 가정사정 탓에 일찌감치 공군장교로 입대, 대위로 예편했다.

67년 행정고시(5회)에 합격, 경제기획원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했지만 초반기는 불운했다. 당시 그는 9년6개월간이나 사무관에 머물렀다. 하지만 76년 서기관 승진 후 탄탄대로를 걷는다. 77년 경제기획원 방위예산담당관을 거쳐 78년 국방부 예산편성국장으로 일한데 이어 80년 신군부 등장과 함께 국보위 운영위원으로 ‘징집’당한 것이 출세의 계기가 된다. 그후 나라의 살림을 좌지우지하는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시절 그는 각 부처 장관과 싸우면서 사상 처음으로 동결예산을 편성했고 특히 해방후 처음으로 국방비를 3백18억원 삭감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문핏대’였다. 이같은 업무스타일은 당시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의 눈에 들어 85년 민정당 12대 전국구의원으로 등원한 뒤 7개월만에 경제기획원차관에 발탁돼 3년6개월간 경제실무책임을 맡게 된다.

6공의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있을 때에는 당시 조순(趙淳)경제부총리와 알력을 빚으며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는 정호용(鄭鎬溶)씨의 의원직 사퇴로 치러진 90년 ‘4·3’대구서갑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지만 92년 14대 총선에서는 정씨에게 패했다. 95년에는 ‘경제시장’을 내세우며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선거에 나서 당선됐다.

비상한 두뇌에 추진력이 강하고 인기도 있으나 지난 3년간 대구경제가 더 악화됐다는 혹평도 받고 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시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21세기 대구의 비전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 국민신당 유성환후보 ▼

30여년을 ‘야당투사’로 지낸 의리의 정치인. 주위에서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직도 가슴이 뜨거운’ 그를 ‘열혈청년’이라 부른다. 경북 성주출신으로 영남대 법과를 나와 60년 진보정당인 사회대중당소속 경북도의원으로 정치에 입문.

통일사회당을 거쳐 신민당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추협 등을 거쳐 85년 신민당후보로 12대 총선에서 첫 금배지를 달았으나 이듬해 ‘이 나라의 국시(國是)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는 국회 발언으로 구속돼 의원직을 잃었다. 3당합당 때 보스인 김영삼전대통령을 따라 여당인사가 된 그는 14대때 전국구의원을 지냈으며 지난해 대선 때에는 이인제(李仁濟)후보를 지지, 국민신당으로 옮겼다.

그는 “시장이 되면 4년 내내 당당하게 소형차 티코를 타고 적폐를 혁파하는 ‘티코행정’, 거품을 빼는 ‘티코경제’, 허영을 없애는 ‘티코사회기풍’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행정경험이 전무한 게 약점.

▼ 무소속 권만성후보 ▼

한국지방정경연구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권후보는 11∼13대 총선에서 잇따라 낙마한 정치지망생. 대구고와 한국외국어대 정치학과를 나와 국제경제연구원(KIEI)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에서 연구원생활을 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수학했다. 그는 “새로운 지역출신이 선도그룹을 형성해 대구를 거듭나게 해야 한다”며 ‘살맛나는 대구, 활기 넘치는 대구’건설을 외치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문 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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