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광주는 4단계의 압축된 역사를 경험한다. 5·17이전 학생시위와 경찰진압이 첫단계였다. 2단계는 하나회그룹의 신군부가 전국계엄확대 조치와 함께 살상진압을 자행한 18일부터의 사흘간이다. 3단계는 바로 5·18민주화운동의 핵심인 ‘시민공동체 자치기간’이다. 22일부터 전남도청이 무력점령되는 27일까지 광주는 의로운 시민공동체였다.
▼공권력 공백상태에서도 약탈 방화나 외국인 공격이 없었다. 그런 5·18은 세계언론에 생생하게 보도됐고 지구촌의 아낌없는 지지를 받았다. 외곽 봉쇄로 고립된 ‘공동체’는 생필품 부족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매점매석이 없었고 식료품판매도 자율과 질서가 지켜졌다. 최근 인도네시아의 화교습격이나 미국 로스앤젤레스 폭동 때 한국인 점포 약탈과는 대조적이었다.
▼5·18기념일 이틀 전, 시위에 나선 민주노총의 ‘질서유지단’을 보면서 역사발전을 실감한다. 5·18시민의식이 그 세계화의 점화로 보상받듯이 평화시위의 요구도 더욱 경청될 것이다. 5·18민주항쟁은 그 진상규명이 미흡하지만 극단위기 속의 자율의지가 핵심가치로 정제(精製)됐다. 갈등해결의 주체는 정치세력이기보다 광범한 시민사회라는 것이 투렌의 말이다.
〈김재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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