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18/서울 성지중고]「모의 형사재판」이색교육

  • 입력 1998년 5월 18일 07시 52분


성지중고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는 일반 학교에서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아이들이다. 급우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약물중독에 빠졌던 경험이 있는 학생들도 많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 이들이 다시 비행청소년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를 고민하던 교사들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모의재판. 학생들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다.

지난해 10월 처음 열린 모의재판의 주제는 ‘학교폭력’. 당시는 검찰에서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을 벌이는 등 학교폭력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던 때였다.

이 모의재판에서는 같은 반 학생인 ‘심약한’군을 폭행해 숨지게 한 ‘전평범’군의 사건을 다뤘다. 재판장과 검사, 피고 등 등장인물은 모두 학생들이 맡았다. 대본도 학생들이 담당교사와 상의해 직접 만들었다. 실제로 재판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많아 모의재판은 더욱 사실감있게 그려졌다. 성지중고 강당에서 실시된 모의재판에는 이 학교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인근 중고등학교학생들까지 몰려와 성황을 이뤘다. 이 대본은 그 뒤 모방송국 청소년프로그램에서 각색돼 방영되기도 했다.

18일 서울 동숭동 문예회관에서 열리는 두번째 모의재판의 주제는 ‘약물남용’. 친구의 자취집에서 부탄가스를 흡입한 ‘노남용’군이 환각상태에서 친구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 학생들은 노군의 범행동기를 경제위기라는 시대상황과 결부시켰다.

노군의 아버지는 IMF한파로 일자리를 잃은 뒤 술에 취해 가족들에게 자주 폭력을 일삼았다. 노군은 환각상태에서 친구를 술취한 아버지로 착각하고 맥주병을 휘두르는 것.

모의재판 진행을 맡은 최윤선(35)교무과장은 “비행 청소년문제는 단지 해당 학생만의 잘못이 아니라 미리 예방하지 못한 기성세대에게도 잘못이 많다”며 “비행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고 있는지 학생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 이같은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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