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언니(18)

  • 입력 1998년 5월 18일 19시 02분


그날 저녁 잠이 들려고 봉순이 언니와 한 이불에 누웠을 때 내가 물었다.

―언니, 내가 왜 주인집 딸년이야?

나는 이사오는 순서대로 주인이 되는 줄 알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집에서 어머니는 주인집을 가리켜 저 주인들의 덕으로 급하게 방을 얻어 이사왔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집에도 우리보다 먼저 살고 있었던 그들 중의 하나가 주인이겠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 생각도 사실은 해보지 않았었다. 다만 그 아이가 나를 때리고 욕을 하자 그런 것이 아니었나 짐작해본 것뿐이었다.

―그거야 우리가 이 집을 샀으니까 그렇지….

―집을 사면 주인이야?

언니는 돈을 주면 집이 자기 것이 되는 거라고 말했다. 집도 사탕처럼 사는 것이라니. 어떻게 장롱도 들여놓고 옷도 걸어놓고 사람이 사는 집을 사고 판단 말인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나쁜 아이가 되는 길이라는 것인지.

그러는 사이 우리집에는 돼지 엄마가, 우리들이 모두 돼지라고 부르는 살찐 아들을 옆에 끼고, 꼭 식사시간만 되면 열심히 곗돈을 받으러 와서, 숟갈 하나만 더 놔줘요, 하며 밥을 먹고 갔고, 어머니는 그 곗돈을 타서, 나를 때리고, 주인집 딸년이라고 욕하던 아이들의 부모에게 방을 빼달라고 했다. 얼마후, 우리는 한옥의 다섯개 방을 다 쓰게 되었고 어머니는 장독아래 광을 고쳐서 푸르고 흰 타일을 잔뜩 붙이고는 목욕탕을 들였다. 욕하는 아이들까지 없어지고 나자 나는 정말로 심심해졌다.

담이 높은 큰 집들에는 아이들이 없었고 있다해도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않았다. 우리 언니와 오빠도 그건 마찬가지여서 학교를 끝내면 집에 돌아와 책을 읽다가 중학교 입시를 위해서 과외를 받으러 가거나 어머니의 감독 밑에서 숙제를 하거나 했다. 건너편 판잣집들에는 아주 많은 아이들이 살고 있었지만 그 아이들은 내게 접근하지 않았다.

나는 늘 혼자였다. 내 곁에 있던 봉순이 언니도 사라지고 없었다. 아랫동네로 이사온 후 언니는 연애를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새로 들여놓은 냉장고에 어머니가 놓아둔 콜라나 사이다 그도 아니면 제과점 케이크나 파인애플 통조림을 들고 아무도 없는 집앞의 대문에 쪼그리고 앉아 그것을 먹었다. 아이들은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나를 힐끗거리다가 우우 몰려가고 몰려왔다가 사라졌다.

어느날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왔다. 아이는 내가 먹는 케이크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그거 되게 맛없지?

나는 아이에게 케이크를 조금 내밀었다. 아이는 케이크를 한입 먹어보더니 꿀꺽 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너무 조금이라 맛을 모르겠는데….

나는 그애에게 조금 더 케이크를 내밀고는 열심히 그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는 사이 내 주위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나를 심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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