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세리 神話

  • 입력 1998년 5월 18일 19시 03분


세계 정상을 꿈꾸며 미국에 건너간 한국 여성골퍼의 집념어린 도전이 ‘신화(神話)’를 만들어 냈다. 어제 미국 윌밍턴에서 폐막된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대회에서 박세리선수가 첫 라운드부터 선두를 유지한 끝에 우승의 영예를 차지한 것이다. 미국 여자프로골프를 대표하는 4대 메이저대회의 하나로 세계 최상급 선수들이 참가하는 이 대회에서 박세리는 당초 우승후보로 꼽히지 못했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도 부족한데다 선수층이 두꺼운 미국과 유럽의 벽을 뛰어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세리는 예상을 뒤엎었다. 첫날부터 6언더파 65타를 치며 선두로 떠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코스에서의 기량은 물론이고 정신력이나 투지면에서도 쟁쟁한 선수들을 시종 압도했다. 서구선수의 우승만을 보아온 각국 언론들은 박세리의 돌풍을 ‘반란’으로 표현했다. 혹시 막판에 역전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씻고 끝까지 흔들림 없는 경기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박세리의 우승은 세계 골프역사를 새로 써야할 만큼 놀랍고 획기적인 것이다. 남녀를 통틀어 동양인이 미국 프로골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골프신동 타이거 우즈가 세운 최연소 메이저대회 우승기록도 깨뜨렸다. 미국 프로테스트를 막 통과한 신인으로서 그가 이룩한 쾌거는 세계 골프계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박세리가 전해온 낭보는 전국민을 모처럼 활짝 웃게 했다. 온통 우울한 소식뿐인 답답한 현실에서 시원한 청량감을 안겨주었다. 국가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 스포츠가 국민의 사기를 높이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경제난국을 맞아 의기소침해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꿈과 용기를 심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국내에서 골프를 배운 그가 세계 정상에 섰다는 사실은 미래를 개척하는 데 환경보다는 개인의 꿈과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박세리의 화려한 영광이 있기까지에는 뒤에서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일찍 박세리의 재능을 찾아내 프로골퍼로 키운 부친의 헌신이 없었다면 이번 우승은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박세리와 10년 장기계약을 하고 그 가능성에 연간 10억원을 투자한 기업의 후원도 스포츠 마케팅의 성공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박세리의 앞날은 밝다. 21세의 나이로 여러 면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계속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꾸준한 노력 이외에 국민적 성원이 필요하다. 박세리 신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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