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창혁/정부의 印尼대응 너무 안일

  • 입력 1998년 5월 18일 20시 06분


미국과 일본이 교민철수를 서두르는 등 인도네시아 사태가 심각한 양상을 띠기 시작한 15일, 외교통상부는 언론에 이에 관한 ‘신중한 보도’를 거듭 요청했다. 이를테면 ‘교민철수’를 수하르토정권 조기퇴진을 위한 ‘카드’로 사용하고 있는 미일과 우리의 처지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외통부가 말한 ‘우리의 처지’란 인도네시아에 빌려준 45억달러(4월말 현재)의 채권회수와 투자문제를 의미했다. 잘못했다가는 IMF로 가뜩이나 어려운데 돈까지 떼일 수 있다는 우려였다.

외통부는 그러면서 이날 오후 “폭력소요양상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피해는 교민 1명이 시위현장을 지나다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것뿐이며 상황도 ‘소강국면’”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그 직후 김종필(金鍾泌)총리서리 주재로 재정경제 외교통상 산업자원장관 등이 참석하는 ‘관계장관 대책회의’를 16일에 소집키로 했다. 총리실의 관계자는 “외통부에서는 장관회의까지 소집해 ‘문제’를 키우는데 난색을 표명했지만 교민들의 안전이 급선무였다”고 소집배경을 설명했고 17일에는 마침내 특별기로 교민들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외통부 관계자들은 18일 “외통부의 대응이 너무 안일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현지 대사관이 일처리를 ‘요령부득’으로 해 질책까지 받았다고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았다.

경위야 어떻든 총리실이 서두르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외통부는 지금도 ‘신중한 접근’ 운운하며 사태를 관망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해외 거주 자국인의 안전에 대해 쏟는 본국정부의 열과 성의가 선진국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창혁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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