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통화는 각각 유래를 갖고 있으나 이념(理念)이 통화의 명칭이 된 예는 없다. 유럽 단일통화 ‘유러’는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각국이 마르크 프랑 리라 등 고유의 화폐를 버리고 새로운 통화를 공유함으로써 통합을 한단계 진전시켰다. 유러라는 명칭은 ‘하나의 유럽’이라는 목표를 상징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는 69년에 통화통합을 논의했으며 79년에는 유럽통화제도(EMS)가 발족됐다. 유러를 통화로 쓰는 11개국의 국내총생산은 세계 총생산의 19.4%를 차지, 미국(19.6%)에 필적하고 일본(7.7%)을 훨씬 웃돈다.
급성장한 일본경제에 대항하기 위해 유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일본의 위협이 없었을 때부터 단일 유럽통화 구상이 전개됐었다.
국가간 패권 다툼에 따라 유럽은 두번이나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세번째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국가 본연의 모습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발상이 유럽에 널리 퍼져 오늘의 화폐통합에 이르게 됐다.
통화는 군과 함께 국가 주권의 중핵으로 여겨져 왔다. 이를 서로 내놓고 11개국이 하나의 국가처럼 된다면 전쟁은 없을 것이다.
미국 달러와의 역학관계 등 경제면에서 유러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만 보면 유러가 갖는 역사적 의의를 이해할 수 없다.
국가 국민 주권 국경 통화 등을 묶어 근대국가 체제를 만든 것은 프랑스혁명 후의 유럽이었다. 그 본가(本家)가 모델을 바꾸려 하는 것이다.
〈정리·도쿄〓윤상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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