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 배심원평결]車열쇠 쥐고 있는 남편

  • 입력 1998년 5월 20일 19시 45분


▼ 남편생각 ▼

이달수(30·신세계 백화점 대리)

대학 2학년 때 면허를 따서 이제 운전경력이 10년입니다. 그동안 접촉사고 한번 낸 적 없는 ‘모범 운전자’죠. 꼼꼼한 성격 때문인지 방어운전에 자신이 있어요. 차사고는 100% ‘운전미숙’ 때문에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아내에게 차열쇠를 내주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미숙한 운전으로 아내가 다치거나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운전하다가 차가 긁혔다”며 아내를 야단치는 다른 남자들처럼 차가 아까워서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어설픈 운전실력으로 거리에 나온 여성 운전자가 ‘수난’당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여성이 모는 차를 보면 괜히 경적을 울려대거나 접촉사고가 났을 때 자기가 실수하고도 상대 여자운전자를 ‘윽박’지르는 성질 나쁜 남자운전자가 많거든요. 아내가 그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가끔 주말에 교외로 나갔다가 ‘한잔’ 생각이 날 때는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천천히’ 운전연습을 시켜 익숙해지면 4∼5년쯤 뒤에나 차열쇠를 넘겨줄 생각입니다.

▼ 아내생각 ▼

최재선(28·주부·서울 노원구 상계동)

신세계백화점 미아점에서 근무하다가 달수씨를 만나 사내연애끝에 96년 10월 결혼했어요.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 뒀고 올해 초에는 아들 상곤이가 태어났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인 94년 재수 끝에 운전면허를 땄어요. 하지만 차를 직접 몰고 거리에 나가본 적은 없었죠. 상계동에 살림을 차린 뒤 운전을 배우고 싶더라고요.

남편차가 소형인데다 자동변속기 차량이어서 별 부담도 없고요. 지난해부터 남편이 충무로 본사로 출근하면서 주차문제로 평일에는 차를 집앞에 세워두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차 열쇠’를 내놓지 않는 거예요. ‘그런 운전실력으로 거리에 나가면 위험하다’는 이유지요. 바쁜 출근시간에 허겁지겁 달려 나가는 남편을 보면서 “내가 운전을 하면 역까지 태워다 줄 수 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어요. 비싼 종합보험을 들어놓고 남편 혼자만 운전하는 게 아깝기도 하고요.

처음부터 운전에 익숙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남보다 운동신경이 둔한 것도 아니거든요. 아기가 크면 쇼핑을 가거나 병원에 다닐 때 차 없이는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빨리 차열쇠를 넘겨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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