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민영빈/영어가 통하면 세계가 친구

  • 입력 1998년 5월 21일 19시 26분


“요새 한국에서는 외국인이, 특히 미국 사람이 미제차를 몰고 주유소에 가면 서비스를 거절한다는데 사실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한국에 있는 많은 친구에게서 수시로 연락이 옵니다. 한국인들의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Xenophobia)이 IMF 이후에 도가 지나치게 심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대화는 워싱턴에 있는 우리 대사관의 고위직 외교관들이 요새 늘 겪는 일로서 참으로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다고들 한다.

솔직히 우리 한국 사람의 외국인 혐오증은 세계에서 일등 아니면 이등인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외국인 혐오증 역사는 멀게는 대원군의 척화비에서 비롯해 일제시대, 미 소의 한반도 분단 점령, 6·25전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면 우리 한국인의 외국인 혐오증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IMF체제 극복을 위해 두가지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하나는 내부적인 구조 조정, 즉 재벌 금융기관의 혁신 및 불필요한 규제 혁파다. 또 하나는 외국의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일이다. 이 두가지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21세기에 후진국의 위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전자는 우리의 힘으로 해나갈 수 있으나 후자는 외국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외국인 혐오증은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자세히 따져 보면 많은 한국인이 정말로 서양인들이 싫어서 멀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서양인을 멀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영어가 안 통해서다. 이를 서양인들은 자기들을 싫어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이러한 비극적 오해의 원인(遠因)은 결국 과거 50년간의 잘못된 영어 교육에 있다.

지난 30년 동안 중고등학교 영어시간에 학생들은 고추집보물(固抽集普物·고유 추상 집합 보통 물질명사) 왕래발착동사(往來發着動詞)등을 외는 일만 했다. 이런 영어를 배운 학생이 어떻게 미국인과 의사 소통이 되겠는가.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21세기에 후진국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영어를 제대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 모든 대학 졸업자가 자기 전공 분야에서 영어 실무를 볼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영어 교육을 개혁하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2020년이 되면 말레이시아 모든 국민이 모국어 영어 중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겠다는 국가 교육 목표를 최근 세계에 선포했다. 말레이시아의 성공은 세계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도 영어 교육 30년 계획을 정책 목표로 세우자. 이를 위해서는 온 국민이 영어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이가 우리말을 하기 시작하면 영어도 동시에 가르쳐 주고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에서 산 영어를 가르쳐주며 서양인과 어울려 놀고 생활하는 문화에 익숙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영어 교육 30년의 야심찬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영어 사랑이 곧 나라 사랑’이라는 자세로 영어 조기교육에 힘써야 한다.

민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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