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배긍찬/印尼의 정치과제

  • 입력 1998년 5월 21일 19시 26분


2월 이후 국내외적으로 사임 압력에 시달려왔던 수하르토 대통령이 마침내 하야를 선언하고 대통령직을 하비비 부통령에게 이양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는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인도네시아 상황이 극히 가변적이기 때문에 포스트 수하르토 체제가 어떠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인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 잔여임기 채울지 관심 ▼

먼저 대통령직을 승계한 하비비가 수하르토의 잔여임기가 끝나는 2003년까지 대통령직을 고수하려 든다면 이는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가 될 것이다. 하비비를 수하르토의 분신 또는 정치적 양자로 생각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국민은 그가 진정으로 정치 경제개혁을 주도해 나갈 인물로 보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하르토가 그의 뒤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퇴임 이후를 관리하려는 것으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인도네시아의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인 군부의 확고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으며 미국 및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도 그가 인도네시아의 경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주도해 나갈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다. 하비비가 헌법에 따라 수하르토의 잔여임기를 채우려 할 경우 또다른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한 정치 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경우 군사 쿠데타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하비비가 잔여임기를 채우기보다는 국민과 정치권의 압력에 의해 단기의 과도정부를 이끌어나갈 수반으로서의 역할로 끝날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가 수행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역시 정치개혁이며 특히 차기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현행과 같이 국민협의회를 통한 간선제가 유지될 경우 차기 대통령으로서 군내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온건개혁 성향의 위란토 국방장관 겸 통합군 사령관이 유력한 후보가 될 것이다. 위란토 장군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얻고 있으며 특히 인도네시아 경제성장의 견인차라고 할 수 있는 화교 기업인들로부터도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군부 인사가 정치 전면에 직접 나서는 대신 군부의 지지를 받는 민간지도자를 옹립할 경우에는 에밀 살림 전환경부장관이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에밀 살림은 2월 하비비를 대신해 부통령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집권층내 인기가 높고 합리적 개혁주의자로 당면한 개혁을 수행하는데 적합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향후 대통령 직선제가 채택되거나 또는 인도네시아내 다양한 사회세력들의 대중 정치참여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대될 경우 이슬람운동권의 기수 아미엔 라이스 또는 수카르노 전대통령의 딸로서 그의 정치적 후광을 업고 있는 메가와티 여사가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정치발전 단계를 감안한다면 재야 정치세력이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현 상황에서 대통령 직선제라든지 정치참여의 폭발현상과 같은 것은 셀 수 없이 다양한 종족 언어 종교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도네시아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美-IMF개입이 변수 ▼

따라서 인도네시아의 개혁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성을 갖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과 IMF 등 외부세력의 전략적 개입도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다만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집권층과 사회저변에 거대한 연계망을 구축하고 있는 이슬람 정치세력, 그리고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으나 정치적으로 무력한 소수 화교집단들이 서로 권력을 어떻게 공유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인도네시아의 최대 정치과제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배긍찬<외교안보연구원교수 아태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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