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할아버지의 편지묶음,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그리고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현암사).
여름날 아침 일찍부터 노랗게 피어나는 호박꽃이 그럴까, 저녁나절에 하얗게 피고지는 박꽃이 그럴까. 아니면 헛간의 빈 자리에 놓여 자신을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요긴할 땐 손발 이상인, 고지식한 괭이가 그럴까….
헛헛하고 강인하기가 지푸라기 같고 넉넉하고 푸근하기가 질그릇 같은 고집쟁이 농사꾼. 그런 그의 편지글은 깊은 산속의 약초처럼, 소나기 끝 솔밭 사이에 듣는 선선한 바람처럼, 법석을 떠는 법이 없다. 그저 가만가만히 세상사는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들려준다.
‘스님, …앞산의 상수리나무와 자작나무가 누렇게 빛이 바래 머지않아 떨어질 잎들을 고르고 있습니다. 나무를 좀 보세요. 춥고 먼 길을 가자니까 될 수 있는대로 간편한 몸가짐을 해야겠어서 잎을 다 떨궈 버리려는 걸 말이에요. 사람한테는 왜 저런 지혜가 없을까요?
해마다 낙엽을 보고 또 엄동에 까맣게 언 솔잎을 보며 생각합니다. 참삶이란 부단히 버리고 끝끝내 지키는 일이 아닐까. 가을의 낙엽은 버릴 것은 버리라 하고, 겨울의 언 솔잎은 지킬 것은 끝내 지키라 하는, 자연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가 서신을 주고받는 이들은 대중없다.
법연 명진 현기 같은 스님도 있고, 신영복 같은 출소 장기수도 있고, 권정생 같은 동화작가도 있고, 이철수 같은 화가도 있고, 김용택 같은 시인도 있고, 염무웅 같은 교수도 있고, 종로서적 이철지 같은 사장도 있다.
그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삼복의 땡볕 속에서 피어나는 도라지가 씨통을 통통하게 매달듯, 그렇게 몸도 마음도 부자가 된다.
그에게 가장 위대한 스승은 자연이다.
그는 봄에 담배 씨만큼이나 쬐고만 돌가지 씨를 뿌리면서 문득 깨달았다. 씨는 작아야 뿌리기도 묻기도 간수하기도 쉽구나. 그래서 씨는 이렇게 작게 생겨났구나….
낙락장송으로 자라는 솔 씨는 쌀알의 오분의 일이 될까 말까 하고, 몇백 년을 살고 몇 아름드리로 크는 느티나무 씨는 이파리 뒤편에 붙어 있다고 하던데, 얼마나 작은지 이제껏 보질 못했구나….
그의 생각은 이어진다.
그래서 나무도 어린 묘목을 심거나 옮겨 심어야 살기도 잘 사는구나. 그렇구나. 종교니 이념이니, 인간해방이니 민족해방이니 하는 것들도 무슨 씨 비슷한 데가 있어서 그 씨를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야 하는구나.
그런데 요즘 논의들은 다 큰 나무를 옮겨 심는 것처럼 어마어마해서 가슴에 심기보다는 짊어지고 다니지는 않는가. 그 무거운 걸 짊어지느라 사람은 사람대로 지치고 사람의 등짝에 얹힌 이론은 이론대로 시들어 버리는건 아닌가….
사십년이 넘도록 갈라진 반쪽 땅에서 ‘온달’을 보는게 달 보기도 부끄럽다는 그. 갈수록 세월의 흐름이 역사보다는 순간과 개인적인 삶으로 오그라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는 직접 진흙도 이기고 메주를 쑨다. 그 때마다 ‘집이 나도록’ 이기고 찧어야 엉겨 떨어지지 않는 힘이 생긴다는 이치에 번쩍 눈이 뜨인다.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끝난 것도 설익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4·19도 그렇고. 역사에서 민중이 이겨진다는 것은 무엇이며 집이 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무 심어 십년은 잠깐’이라고, 그 장구함 때문일까. 세월이 가는 걸 본 사람도 나무가 크는 걸 본 사람도 없다는데, 그래도 세월은 가고 나무는 잘 자라기 때문일까. 아니면 흙속에 내린 뿌리만큼, 그만큼 자라는 튼실함이 좋아서일까.
그는 참으로 나무를 사랑한다.
나무는 메마른 곳에서 자란 것일수록 나이테가 쫌쫌하고 단단하고 아름다운 향을 낸다. 그중에서도 아주 진하기로는 대추나무와 박달나무를 못당한다.
“진하게 산다는 건 세월을 살되 세월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봄에 잎이 가장 늦게 돋아나는 대추나무는 이파리가 단단하고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 게지요.”··· 그는 나무를 깎아 곧잘 필통도 만들고 의자도 만든다. 가끔 끌로 나무를 파다 실소를 머금는다. 결따라 파면 힘이 덜 들텐데, 때때로 엇결로 파면서, 사나운 운수가 미련하게 엇결로 사는구나, 싶어서 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끌이 비호같이 잘 들고 솜씨가 어지간하면 엇결도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지만….
스님,
…며칠전 친구 집에 갔습니다. 그곳은 산수 고목이많아 초봄에는 산천이 노랗고 가을에는 빨간 산호주저리로 물이 듭니다. 저도 수유 몇 그루가 있는데 일일이 바르기가 성가셔서 새로 나왔다는 수유 까는 기계에 대해 물어 봤지요.
그 기계는 수유가 제대로 발라지지 않고 짓뭉개져 좋지 않다더군요. 사람의 이빨과 손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대요. 그럼 저 많은 수유를 무슨 수로 바르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대요.
“그걸 뭐 꼭 다 따서 발라야 하느냐, 틈나고 손 자라는 데까지 따고 바르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