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22)

  • 입력 1998년 5월 22일 19시 20분


나는 다시는 그 아이들과 놀지 않았다. 파인애플이나 콜라나 케이크들도 학교에서 돌아올 언니와 오빠의 몫을 잘 남겨놓고 내 몫만 얌전히 잘라 집에서 먹었다. 나는 아버지가 새로 들여놓은 호루겔 피아노 앞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거나, 어머니가 방을 하나 없애고 흙을 부어 새로 가꾸어 놓은 화단에 나가 서 있곤 했다. 나팔꽃 덩굴이 오르는 담, 조그만 얼굴을 들고 생글거리는 채송화, 도둑이 들어오지 말라고 시멘트 담위로 삐죽삐죽 박아놓은 유리조각에 눈을 대고 서 있으면 멀리로 우리 아랫동네에서 아현국민학교 앞까지 끝없는 지붕들의 행렬이 어안렌즈를 통해 보는 것처럼 둥글게 잡혔다.

저 집들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누가 그 집 한 귀퉁이에 서서 나처럼 심심해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늘엔 뭉게구름이 떠 있고 어머니가 아침에 널어놓은 이불의 솜들이 따뜻한 공기를 머금고 부풀어 오르는 여름 오후, 나는 작은 소꿉을 가지고 혼자서 놀았다. 나는 아버지 역할도 했고 어머니 역할도 했으며 식모 역할도 했고 아기 역할도 했다. 늘 반복되는 대본은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침에 회사로 나가고 어머니는 장에 가며 아기는 잠을 자고 식모는 벽돌 부스러기를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고 덜 자란 코스모스 이파리나 샐비어 잎을 따서 김치를 담그는 것. 내 소꿉 속의 가족들은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이 별로 없었으므로 나 혼자로도 그 모든 역할이 충분했다.

그러는 사이 아침이면 이슬 머금은 나팔꽃이 피었고 저녁이면 분꽃들이 조그만 꽃잎을 벌리며 피어났으며 어머니는 계를 하러 나가고 봉순이 언니는 시장에 다녀온다는 똑같은 거짓말을 하고 집밖으로 나갔다.

그 무렵 나에게는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진한 눈섭이 미간에서 아슬아슬하게 붙고 얼굴에 각이 진, 그 당시 유행하던 나팔바지를 우리 동네에서 최초로 입어내던 이웃집의 식모 미자언니였다.

봉순이 언니는 가끔 이미자의 유행가 가사를 적은 것을 가지고 미자 언니네 집으로 놀러가곤 했었다. 아이들과의 첫 대면에서 상처만 입고 물러선 나는 언니를 따라 그 집에 드나들었다. 하지만 봉순이 언니는 예전과는 달리 이제 미자언니와의 대화에 나를 끼워주지 않았다. 둘은 무엇을 그렇게 속살거리는지 몰랐다.

미자언니가 살고 있는 집은 광주의 노부부가 장만해 둔 집이었는데 그 집에 살던 큰 아들 내외가 유학을 떠난 후 노부부만 가끔 올라온다고 했다. 그 집에는 진기한 것들이 많았다. 세죽이라든가 월계꽃이 덮인 담, 파인애플처럼 생긴 커다란 소철, 그리고 그 집 아들이 썼다는 서재에 꽂힌 가지가지 책들…. 두 식모언니가 서로 발개진 얼굴로 속닥거리는 동안 나는 그 집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림이 많은 것을 골라 읽다가 보니, 선데이 서울이라든가 하는 잡지도 집어들었다. 그림이 많다는 것 때문에 골라든 책이었지만 그런 책들 속에는 내가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었던 만화경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넘으면 안될 선을 넘었다든가, 그의 아기를 임신했다던가….

<글: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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