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이를 임상적으로 적용해보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일 것이다. 더구나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우리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이러한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영아용 약도 이러한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은 그 대상이 친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사회보호시설의 영유아였다는 점이다. 자식을 길러본 부모라면 모두 ‘내 자식이 그러한 경우에 있었다면’하는 생각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가장 힘없고 말못하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실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약을 개발하거나 수입하는 입장에서는 개발 시기나 과정의 편의상 수용시설의 아이들을 먼저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 아이가 내 아이라면’하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했다면 그렇게 함부로 실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특히 친부모가 있는 아이들까지 원장의 동의만으로 실험하는 등 과정상 하자가 있었던 것은 어떤 말로도 변명하기 어렵다.
힘들더라도 소아과를 찾는 일반 환자들에게 약의 안전성과 효과를 충분히 설명하고 한명 한명 동의를 얻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동의 인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관련 당국의 명백한 표명은 없지만 아마 이런 실험은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이미 오랫동안 실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이 파문을 계기로 아동에 대한, 특히 사회보호시설의 아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윤리의식과 복지수준을 재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모두가 내 자식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장영희<성신여대교수·유아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