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관의 선거운동

  • 입력 1998년 5월 25일 19시 28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무원들의 불법선거운동이 잇따라 지적돼온 터에 이번에는 최재욱(崔在旭)환경 김선길(金善吉)해양수산부장관이 선거개입 혐의로 선관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 선관위에 따르면 최장관은 지역구에서 의례적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나 김장관의 행동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위법 여부는 조사결과를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현직장관들이 선거개입 시비에 올랐다는 것부터가 유감스러운 일이다.

보도에 의하면 김장관은 근무시간에 지역구를 방문,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뒤 특정후보와 함께 피켓을 들고 가두행진을 하며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보도진에게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시인하면서 “(장관으로서) 앞에 나서지 못하니까 뒤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당에 소속된 장관은 통상적 정당활동은 할 수 있으나 일반 유권자를 상대로 하는 선거운동은 할 수 없다는 것이 선관위의 유권해석이다. 그런데도 김장관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위공직자들의 법의식과 윤리감각 수준이 놀랍고 한심스럽다. 고위공직자라면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않을 만큼 처신을 조심해야 옳다. 최소한 법에 저촉되지 않는지를 미리 알아보고 문제가 되지 않게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공직사회가 그토록 해이해졌다면 공명선거 실현에도, 정권과 국가의 앞날에도 심각한 위험신호가 아닐 수 없다. 엄정한 조사와 처분이 뒤따라야 마땅하다.

그러잖아도 30여명의 공무원이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적발되지는 않았지만 특정후보에게 줄을 대고 음양으로 돕는 공무원은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분위기를 흐리고 공직의 정치적 중립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중대한 문제다. 특정후보가 당선되면 요직에 기용될 것을 약속받고 공무원을 일단 사직한 뒤 후보를 지원하는 ‘선거운동원 위장취업’도 비일비재하다는 소식이다. 공직을 자기집 안방처럼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곳으로 여기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당국은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공무원들의 숨은 선거지원을 가려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명선거는 물건너 가고 공직사회는 선거철마다 본래업무를 팽개친 채 ‘줄대기’바람에 휩쓸릴 것이다. 공직자들은 몸가짐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 후보들은 공무원을 선거운동에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 많은 국민은 “부정선거를 하면 여당부터 처벌하겠다”는 김대중대통령의 발언을 기억하고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