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장영식 신임 韓電사장]『파행인사로 공기업不實』

  • 입력 1998년 5월 26일 06시 35분


공채방식을 통해 우리나라 최대의 공기업인 한국전력 경영사령탑에 앉은 장영식(張榮植·66)사장. 그는 18일 정식으로 취임했지만 여론의 일각에선 “경영경험이 없다”는 등의 지적도 나왔다.

한전은 우리 증시의 풍향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정도의 공기업인 만큼 그 사장 자리는 결코 가벼울 수 없다.

25일 장사장을 찾아갔더니 자격시비에 대한 불쾌감을 강하게 표시했다. 이 부분에서 계속되는 그의 말을 오히려 끊어야 했다.

“나는 기업경영 경험은 없습니다. 초등학생 수준의 사장이 대학생 수준의 부하들에게 뭘 물어보고 경영한다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75년부터 23년간 직간접적으로 한전 경영에 자문을 했고 용역도 많이 맡아 왔어요. 누구보다도 한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어요.

경영에 자신이 있습니다. 기업 경영인이라면 사원과 간부들을 이해시키면서 업무를 추진해야 합니다. 나는 원자력부문과 요금관리를 가르쳐주면서 대화하고 있습니다.”

―공기업도 개혁의 대상입니다. 우리나라 공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전문가가 경영하지 않다보니 부실이 생겼습니다. 공기업 인사에 낙하산, 정치적 압력, 나눠먹기 등이 횡행하면서 공기업 전체에 대한 평가가 나빠졌어요. 전문지식이 있는 전문인이 경영해야 합니다. 또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사례가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는 “한전에 와서 보니 실력있고 정직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일부 부정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사장은 또 “전력의 안정공급 외에 재벌과 다름없이 문어발식 경영을 꾀해온 사람도 있어 이들을 쫓아냈다”며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정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한전을 포함한 주요 공기업을 민영화할 방침입니다만….

“공기업은 공익성과 이윤추구라는 두가지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 둘을 한꺼번에 잡기는 어려워요. 특히 전력과 같은 분야는 세계적으로 공기업이 일반적입니다. 산업의 동력인 전기를 이윤만 추구하는 사기업에 모두 맡기는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기업에만 의존하면 주민부담이 늘고 채산성을 맞추기도 어렵습니다.

미국은 수천개의 사기업이 전력을 공급하고 있지만 이는 드문 경우입니다. 미국의 적지않은 전력회사가 결국 부실화해 정부 보조를 받은 사례도 있어요. 미국 방식의 민영화를 무조건 모방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전 민영화에 대해 어떤 독자적인 생각이 있습니까.

“주인인 정부가 팔라고 하면 팔아야겠지요. 또 세계경제가 자유경쟁체제를 지향하기 때문에 한전의 부분적 민영화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선 발전과 송배전, 그리고 전기판매부문을 독립적 사업부체제로 전환시킨 뒤에 장기적으로 가능한 부문부터 민영화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해요. 전기의 안정공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매각해야 합니다. 매년 새로 지어지는 발전소 정도만 팔면 된다고 봅니다. 전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수력과 원전을 제외한 발전부문을 모두 매각하라는 얘기는 못합니다.”

―한전이 그동안 정보통신사업에 집착해왔고 방송매체인 YTN을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요.

“한전이 왜 전기사업 외에 여러 곳에 문어발처럼 손을 댔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그런 얘기를 듣고 ‘딴 데 신경을 쓰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일은 다른 기관에 맡겨야 합니다. 전기의 안정적인 공급과 관련되지 않은 자회사에는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전력을 체크하는 통신설비 등 한전 자체에 필요한 것은 우리가 해야겠지만….”

―한전은 1백억달러 정도의 외화부채를 지고 있습니다. 공기업들도 외환위기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있고요. 외채를 줄일 복안은 있습니까.

“한전이 외환위기에 7∼8%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전의 공신력을 바탕으로 좋은 조건의 외화를 더 들여와야 합니다. 그러나 전원개발계획을 재조정하여 늦출 수 있는 것은 늦추어야 합니다. 외채를 쓰는 부분은 최소한으로 하고 외채를 쓰지 않는 부분을 최대한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송배전 공사 등에도 최대한 외채를 쓰지 않는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또 현재 19∼20%인 전력예비율을 7∼10%로 낮춰 추가로 들어가는 외채규모를 줄이겠습니다. 전력예비율을 그 정도로 낮추면 원전 4∼5기는 짓지 않아도 됩니다.”

―원자력발전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92년 대통령선거 때 민주당 월간지에 ‘원전은 박정희(朴正熙)정권 때 원폭을 만들기 위해 지어졌다’는 글을 써 오해를 샀습니다. 원전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원전계획은 정상적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전기요금체계를 선진국형으로 개편할 계획을 갖고 있는지요.

“현재 전력의 55%를 차지하는 산업용은 요금체계가 그런대로 잘 되어 있어요. 문제는 전체의 18%를 차지하는 가정용 요금체계입니다. 현재는 마치 세금이나 벌금을 물리는 듯한 요금체계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용량이 5백㎾를 넘으면 ㎾당 4백10원의 요금을 부과하고 있어요. ㎾당 평균원가가 60원인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너무 많이 쓴다고 해서 물리는 벌금이지 요금이 아닙니다.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에요. 물론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가정용 요금은 누진제를 폐지하거나 누진율을 완화할 생각입니다. ”

―남북간 전력협력사업에 대해 강한 의욕을 보이신다지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활동으로 빠른 시일내에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는데 북한에 당장 급한 것이 식량과 전기입니다. 전기는 송전선만 연결하면 우리의 남은 전력으로 북한을 도와줄 수 있어요. 정부가 결정만 하면 빠르면 3개월, 늦어도 6개월이면 전력 공급이 가능합니다.”

―지금 기업 구조조정 과정의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노사간의 긴장이 팽팽합니다. 한전 노조도 상당히 강성이라는 평이 없지 않습니다. 노사문제에는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입니까.

“취임후 노조와의 상견례때 81년 레이건 미국대통령의 과감성 있는 파업대처 사례를 얘기해줬습니다. 당시 일반기업보다 높은 보수를 받았던 관제탑노조가 파업을 했을 때 8만여명 중 6만5천명을 파면했습니다. 그리고 파면된 사람들은 다른 공기업은 물론이고 사기업에도 취업하지 못하도록 정부에서 강경책을 폈다는 얘기를 했지요. 한편으로 내가 미국 대학에서 교원노조 설립의 발기멤버였다는 점도 설명했어요.”

―한전 얘기는 아닙니다만 금융과 기업의 부실에 책임이 있는 경영진과 주주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부실경영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킨 데 대해서는 당연히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의 전문경영인이라는 사람들이 기업비밀을 이용하여 공장부지 주변의 땅을 사서 수백억원을 벌었는데 이를 두고 성공스토리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미국 같으면 15년의 징역에 재산을 몰수합니다.”

〈정리〓임규진·박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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