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배달 직원으로 미국계 씨티은행에 입사해 이 은행 여신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의 한명인 뮬러가 한 말이다.
씨티은행 서울지점이 80년 이후 한국기업에 돈을 빌려줬다가 떼인 사례는 3,4건에 불과하다.
비결은 간단하다. 나중에 고생을 하지 않기 위해 사전에 신용위험 관리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기관과 달리 씨티은행은 원로급 심사전문가들로 구성된 여신심사정책위원회가 여신정책을 좌우한다.
이 위원회는 각 지점의 주요 여신책임자를 직접 임명하고 여신지침이 되는 매뉴얼을 작성하는 일도 맡는다. 매뉴얼에는 각종 위험을 어떻게 측정하고 위험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의 내용이 상세하게 들어 있다. 중요 사항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해고를 당하기 때문에 일선 지점에서는 이 매뉴얼을 ‘바이블(성서)’로 간주한다.국내 금융기관에도 매뉴얼은 있다. 씨티은행 서울지점 심사부 이재일(李載日)이사는 “한국 여러 은행의 여신관련 규정을 보고 우리 것보다 내용이 훨씬 상세하고 체계적이어서 깜짝 놀랐다”면서 “문제는 이처럼 훌륭한 규정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이사는 “규정에 맞지 않는 경우 직속상사는 물론 은행장의 압력도 뿌리칠 수 있는 문화가 뿌리를 내려야 은행이 신용위험에 빠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한마디로 말해 선진금융기관들은 위험관리를 전담하는 별도의 조직을 두고 원칙에 충실하게 위험관리를 한다.
국내 금융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모 미국계 은행 한국지점의 고위심사책임자는 한국 금융기관 신용위험관리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첫째, 한국 금융기관들은 재무제표를 너무 맹신합니다. 재무제표는 과거의 자료인데다 한국 기업의 재무제표는 특히 믿을 수가 없어요. 둘째, 영업과 심사기능이 철저하게 분리돼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영업이 우선시되고 신용위험관리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기본규정이나 원칙도 안 지킨다는 점입니다.”
이 관계자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다가 거래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이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면 누가 한보같은 기업에 돈을 빌려줬겠느냐”고 반문했다.
〈천광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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