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25)

  • 입력 1998년 5월 27일 07시 00분


미자 언니는 잠시 나를 바라보며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봉순이언니가 깊은 밤 달뜬 얼굴로 돌아왔을 때 내가 깨어있기라도 하면 짓는 표정과 비슷했다. 나는 그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니 어서 마음껏 할 일을 하라는 그런 표정을 지으면 모든 것이 아무 일 없이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봉순이 언니는 곧잘 그런 표정에 속아 넘어가곤 했었다. 하지만 미자언니는 잠시 망설이더니 결심을 했다는 듯 하얗고 길쭉하게 생긴 것을 바지 뒤에서 내 앞으로 내놓았다. 그리고는 그곳에 성냥을 켜서 입으로 다시 불을 붙여 내게 내미는 것이었다.

―너도 펴봐 맛있어….

내가 머뭇거리자 미자 언니는 담배를 제 입에 가져갔다. 볼이 홀쭉해져서 광대뼈가 드러나도록 빨아들인 연기를 후우 내뿜으며 그녀는 나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나는 담배를 받아들여 입으로 가져갔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겁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조금의 기침도 안하고 미자 언니가 내어주는 담배를 한대 다 피웠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것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고 있었다. 미자 언니는 나로 하여금 공범이 되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미자언니의 의도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로 날 치부해 버리려는 봉순이 언니의 의도보다 날 긴장시켰고 흥분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런 생각들을 하며 담배를 한대 다 피우고 난 뒤 미자 언니는 짙은 눈썹을 찡그리면서 갑자기 표정을 바꾸어 말했다.

―어쭈구리, 쬐끄만 게 제법이야. 얼라리, 너 보기와는 다르게 보통이 아니구나. 그러면 좋아, 그래, 시방 너도 이걸 먹은 거다… 알았지? 그리구 봉순이나 니네 엄마한테, 내가 이걸 너한테 주었다고 일르면 큰일 난다. 알았지? 안그러면 니네 엄마한테 나도 니가 담배 피운 것 이를 테야.

미자 언니의 말투는 비밀 서약처럼 엄숙했다.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내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이번에는 부엌에서 빨간 액체가 담긴 병을 내와서, 그것을 잔에 따라 내밀었다. 나는 그녀가 내미는 잔을 들어 그 달콤한 것을 한모금 먹어 보았다. 혀에서 느껴지는 맛보다도 먼저 코를 찌르는 독한 향기를 느꼈다. 그것은 콜라를 많이 먹고 난 후, 뱃속에서 코를 향하여 날카롭게 수직으로 올라오던 그것하고도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기분이 좋지않은, 마치 봉순이 언니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새엄마의 목소리처럼 짜릿하면서도 무섭고 불쾌한 느낌의 것이었다. 나는 싫다고 하고 싶었지만 잠자코 그것을 몇모금 더 마신 후 잔을 다시 미자언니에게 내밀었다.

미자언니는 우습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몇잔을 더 연거푸 마셨다. 나는 그녀와 피라도 나누어 마시고 맹세한 동지같은, 비장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의 육체는 한없이 나른해 했다. 푸짐한 햇볕이 그집의 화단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소철의 뾰족한 가시며 세죽의 생선가시같은 이파리도 그 햇볕 아래서 포동포동 살이 오르는 것 같았다.

<글:하일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