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수환추기경]『가진 자가 먼저 고통분담해야』

  • 입력 1998년 5월 27일 20시 14분


“이 IMF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은 가진 자들과 정부쪽에서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도록 말입니다. 그게 고통 분담이고, 그래야만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다고 봅니다.”

서울 명동성당 축성(祝聖) 1백주년과 김수환(金壽煥·76)추기경의 서울 대교구장 착좌(着座) 30주년을 이틀 앞둔 27일 김추기경은 명동성당 내 집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추기경은 이날 회견에서 세간의 관심 사항인 서울 대교구장 후임 문제와 관련, “로마 교황청의 결정 사항이라 무어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6월초나 중순까지는 교황께서 새 교구장을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 일답 내용.

―명동성당 축성 1백주년과 서울 대교구장 착좌 30주년을 맞는 감회를 말씀해 주시죠.

“명동성당은 순교자의 피를 터전으로 삼아 지어진 겁니다. 1백년이라는 형극의 길을 걸어오며 사회의 등대가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과연 등대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밝혀야 할 때 밝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하게 됩니다. 교구장 착좌 30년에 대해선 부족한 저를 오랫동안 참고 보아주신 주변 사람들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교구장 시절 기억에 남는 보람이나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텐데요.

“군사정권시대, 교회와 그들과의 갈등 긴장 그리고 무슨 말을 해야 그 숱한 난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죠. 보람이 있다면 84년과 89년 교황이 두차례 한국을 방문한 점과 87년 6월항쟁때 공권력 투입을 막아 시위 학생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킨 것입니다.”

―추기경께서는 그동안 역사의 고비마다 물줄기를 바꾸어놓는 말씀을 많이 해오셨습니다. 최근엔 좀 줄어든 것이 아닌지.

“모두가 말을 하지 못할 때는 작은 소리를 해도 크게 들리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그 반대의 경우라 할 수 있겠죠.”

―방북 계획은 어떻게 되며 만일 방북하신다면 북한 동포에게 무엇을 먼저 선물하시겠습니까.

“글쎄요. 저의 마음을 전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북한의 식량난 해소에 도움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방북을 추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북 협상은 인내심을 갖고 북한의 자존심과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진행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세를 낮추어야 합니다. 재주 부려선 안됩니다.”

―위기에 처한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를 전해주시죠(이 질문에 김추기경의 얼굴빛이 무거워졌다.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사색에 잠긴 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참 힘들군요. 무슨 말을 해야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당장 달려가서 그들의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지만…. 전쟁과도 같은 상황이지만 어쨌든 이겨내야 합니다. 자포자기해선 안됩니다. 우리에겐 저력이 있으니 내일은 분명 희망적일 겁니다.”

―만일 교구장에서 물러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우선 자유를 만끽하고 싶습니다. 김삿갓처럼 여기 저기 세상 구경도 하고…. 혼자의 여행을 위해 운전면허도 따고 싶은데….”

―월급은 어느 정도 됩니까.

“매월 65만원에 보너스가 400% 입니다. 이중 20만∼30만원을 매달 헌금합니다. 경조사에 들어가는 돈은 아주 조금이고요.”

―얼마전 길상사에서 강론을 하신 적이 있는데 종교간의 화해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시죠.

“우리 피 속엔 불교 유교 문화가 들어있습니다. 타종교와의 대화 가능성이 들어있는 겁니다. 그리고 타종교 신자라 해도 성실하게 살아 간다면 그리스도는 그들을 모두 구원해 주실 겁니다.”

대담을 마칠 무렵 김추기경은 최근 윤석화가 나오는 연극 ‘마스터클래스’를 보았고 18번은 ‘애모’(김수희)에서 ‘사랑을 위하여’(김종환)로 바뀌었다고 귀띔해 주었다.

〈이광표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