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남영/선거풍토 「백년하청」인가?

  • 입력 1998년 5월 28일 19시 18분


한 나라의 선거과정은 그 나라의 정치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선진민주주의 국가의 선거는 자유가 충분히 보장된 가운데 차분하고 질서있는 분위기에서 치러진다. 유권자는 후보자나 정당이 내세우는 정견이나 정책을 꼼꼼하게 비교하고 자신의 표 향방을 결정한다. 따라서 후보자나 정당들의 선거운동은 정책개발에 역점을 둔다. 자연히 선거과정은 정책대결의 양상을 보인다.

▼ 공천과정부터 후진적 ▼

반면 민주정치의 수준이 낮은 나라의 선거는 시끄럽고 무질서하며 정책보다는 인물대결 양상을 보인다. 결국 선거가 생산적인 정책논의의 과정이 아니고 비생산적이며 낭비적인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의 장으로 쉽게 전락하고 만다.

이번 지방선거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선거풍토는 역시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정당공천부터가 그렇다. 예컨대 과거 여당을 하던 사람이 정권교체 후에 또다시 여당의 간판을 걸고 출마하고 있다. 유권자에게 많이 알려진 인사들을 영입해 당선자 수를 늘려놓고 보자는 정치권의 얄팍한 계산이 이번 공천과정에 나타났다. 따라서 후보자의 이념 정견 정책은 선거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후보자간 정책적 차별성을 전혀 알 수 없는 유권자들이 선거과정에 대해 냉담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텔레비전을 통한 후보자 토론 대담도 결국 인신공격이나 흑색선전, 심지어 지역감정을 고의로 유발시키려는 저급한 내용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저질의 선거운동은 한국정치가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반영해 주고 있다.

선거는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고 공직사회와 시민사회를 연계시키며 일 잘한 공직자에게는 재선의 영광을, 일 못한 공직자에 대해서는 공직박탈이라는 벌을 주는 좋은 제도다. 따라서 성숙한 사회에서의 선거는 축제분위기에서 치러진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의 선거는 정당내 공천과정의 비민주성은 차치하고라도 선거과정 자체의 비생산성 낭비성으로 인해 영광없는 상처만을 정치권과 국민에게 남기는 행사가 아닌가 싶다.

이젠 투표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현재 난무하고 있는 인신공격 흑색선전 지역감정유발 등 저급한 방법의 선거운동은 근절되어야 한다. 특히 지금은 IMF경제위기를 맞이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더 좋은 정책개발을 위해 다 함께 매진해야 할 때다. 선거과정이 잘못되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사건을 과장하여 유포하는 행위, 후보자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 현 공직자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행위, 위기상황에 있는 현 경제질서를 파괴하고자 하는 행위,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정치불신을 가중시키는 행위 등은 외부 관찰자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결코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비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저질의 선거과정은 국익에 도움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과 지방자치단체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결국지방자치의 성패는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에 달려있다. 그러나 현재 국민이 자치단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관심과 조소 냉소는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치단체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저질후보 낙선시켜야 ▼

저질의 선거풍토를 개선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는 역시 유권자들이다. 저질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자를 낙선시켜야 한다. 즉 유권자 개개인이 투표할 때 선거운동을 잘한 후보와 그렇지 못한 후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저질 선거운동에 고개를 돌리고 정치적 무관심 속에 안주해버리는 피동적인 국민이 있는 한 저질 선거운동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는 저질 선거운동을 한 후보자를 철저히 가려내 기필코 낙선시켜 올해가 공명선거의 원년으로 기록되길 바란다.

이남영<숙명여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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