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서세호/하비비와 印尼군부

  • 입력 1998년 5월 28일 19시 18분


인도네시아에서 하비비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새로 출범했으나 정국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전망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변수 중 하나가 바로 하비비대통령과 군부의 관계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에 대해 오해가 많은 것 같다.

현재 국내에는 양측 사이에 커다란 긴장과 갈등이 있는 것처럼 알려져 있다. 전통적으로 군출신의 몫인 부통령자리를 차지한 하비비에 대해 군부의 감정이 좋지 않으며 군부는 하비비의 용도가 없어지는 순간 제거해버릴 것처럼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상당한 과장과 왜곡이 있으며 그 배후에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비비와 군부의 관계가 처음 문제된 것은 80년대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과학기술장관이던 하비비가 해외 군사장비 도입에 있어 결정권을 행사하면서 베니통합군사령관과 불협화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베니장군과의 개인적 관계 때문에 생긴 일이며 이제는 베니가 야인이 된지도 오래됐다. 90년대초에 있었던 구 동독제 해군함정 도입문제도 비슷하다. 당시 해군은 신형 함정을 원했지만 하비비장관은 국가재정을 고려해 39척의 중고 함정을 구입토록 했다.

인도네시아의 군 수뇌부를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던 견해로는 하비비와 일부 고위장성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군부 전체와의 갈등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비비는 93년 이후 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특히 탄중통합군사령관(현 정치안보조정장관)과는 절친한 사이다. 이는 3월 하비비가 수하르토의 후계자격인 부통령자리에 오를 때 군이 아무런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위란토국방장관등현재의 군 실세들과도 마찬가지다. 하비비와 군 사이에는 수하르토를 정점으로 한 ‘횡적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어 재야세력들이 이들의 결집된 힘을 경계할 정도다.

큰 의미가 없는 과거사를 내세워 하비비에게 ‘언젠가는 폐기될 카드’라는 이미지를 심은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독일에서 공부한 하비비가 미국 일변도의 외교에서 탈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인도네시아가 미국으로부터 F16전투기를 구매하려다 미국 의회가 인권문제로 제동을 걸자 하비비는 러시아산 수호이30 전투기로 기종을 변경, 미국을 크게 당황케 했다. 당시 하비비가 전투기 구매건을 ‘미국과의 관계를 자주적으로 재정립하는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비비는 민간인 사회에도 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이슬람교 지성인 조직(ICMI)’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재야세력의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미엔 라이스 교수 역시 2,3년전만 해도 ICMI에서 하비비와 함께 활동하던 인물이었다.

수하르토나 하비비나 똑같이 ‘썩은 사과’라는 일부의 비방과 달리 하비비는 최근 족벌주의 척결을 선언하고 자신의 동생을 먼저 공직에서 물러나게 함으로써 발빠르게 주변정리를 시작했다. ‘포스트 수하르토’시기에 뚜렷한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하비비는 군의 지지를, 군은 하비비와 같은 민간정치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하비비가 군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지, 그리고 얼마나 투명하게 정치 경제 개혁을 추진해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닦아나갈지 좀더 지켜볼 일이다.

서세호<예비역준장·전 주인니대사관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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