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국내기업은 상상도 못했던 전직(轉職)프로그램을 한국IBM이 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IBM 본사가 미국에서 재취업지원(Out Placement)프로그램을 실시한 전통이 있기 때문.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KK컨설팅은 퇴직예정자의 인적사항을 샅샅이 분석해 향후 재취업이 가능한 분야를 선정했다. 이어 직능교육과 인터뷰훈련 등이 시행됐다. KK 김국길(金國吉)사장의 설명.
“그 결과 상당수의 인력이 재취업에 성공했습니다. 한번 채용한 사람에 대해선 나갈 때도 책임을 진다는 회사 방침은 남아있는 사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약 21단계에 이르는 정교한 전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가 많다. 미국경영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인력을 감축할 때 전직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미국기업 비율은 91년 50%에서 94년 80%로 높아졌다.
미국 보잉사도 해고인원이 엄청나 세계를 놀라게 했던 기업. 94년부터 지금까지 종업원 3만명 가운데 절반을 축소했다. 이 때 노사합의로 만들어진 것이 해고노동자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노사위원회(Labor Management Committee).
위원회는 근로자들에게 실직을 대비해 경력상담 직업훈련을 실시한다. 전화로 수시로 새 직장을 소개하기도 한다. 회사를 떠나 창업하겠다는 종업원에겐 금융지원도 해준다. 재원은 회사 노동조합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공동으로 마련한다.
미국 기업들은 이런 투자를 왜 하는 걸까. “미국에선 경제불황으로 실업이 시작되던 70년대부터 이 제도는 도입됐습니다. 미국기업들은 조직내부의 반발을 줄이고 조직을 활성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지요.”(LG경제연구원 김성식·金成植부연구위원)
국내에서도 기업내 전직프로그램이 서서히 생겨난다.
8천여명의 근로자를 정리해고하기로 방침을 정한 현대자동차는 25일 사내 전직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첫 프로그램은 유통전문과정. 25명의 퇴직예정자들이 2주일 동안 사내 연수원에서 숙식하며 교육을 받고 있다. 내용은 창업시 사업선정 입지선정 세무관계 계약방법 등.
현대자동차는 창업과정과 함께 자격증 취득 과정등 모두 11개 과정에 대해각각 2주∼3개월 동안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인기없는 강좌는 없애는 등 교육생의 희망을 반영한 교육과정으로 만들어갈 방침.
SK텔레콤도 2월말 명예퇴직한 5백명 중 재취업이나 창업을 희망하는 2백여명을 대상으로 창업 및 전직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와 함께 창업지원실을 설치 운영중이다.
능률협회는 최근 협회내 직업전환센터에 전직지원프로그램인 ‘아웃플레이스먼트컨설팅(OPC)사업’을 마련해 퇴직예정자의 전직을 돕고 있다.
기업 내부의 전직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는 올해 2백81억원을 들여 1만9천여명의 이직 예정 근로자가 교육을 받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전직프로그램은 선진국에 비하면 수준이 낮다. KK 김국길사장의 진단.
“선진국 퇴직자는 생계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장기적 차원에서 개인의 숨은 능력을 개발해가며 전직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적성이나 능력에 상관없이 급하게 대안(代案)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따라서 국내 기업들도 전직프로그램을 제도적으로 상설화해야 하며 퇴직예정자가 일정기간 전직교육을 받도록 보장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박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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