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동안 논의돼온 반(反)인류적 범죄 처벌을 위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창설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이루게 됐다.
유엔은 6월15일부터 7월 17일까지 로마에서 회원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ICC 창설을 위한 회의를 갖고 지금까지 마련된 초안을 토대로 재판소 규정을 다자협약으로 채택, 서명할 예정이다. ICC는 대량학살,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수사기구도 보유할 예정이다.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인류는 반인류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단죄할 국제재판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같은 재판소는 그동안 △45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 △45년 도쿄 국제군사재판소 △93년 유고 전범을 다루는 국제재판소 △94년 르완다 사태에 관한 국제재판소 등 임시 형태로 4차례 설치됐다.
그러나 이들은 임시재판소라는 한계가 있어 많은 범죄자들이 소추를 피해갔다. ICC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상설사법기관으로 영구히 존속 활동한다.
지금까지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간의 분쟁을 다뤘을 뿐 개인의 범죄는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국제법의 영역에서 제외됐던 개인의 형사책임을 ICC가 국제법에 의거, 소추한다는 것은 국제법의 발전에 있어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ICC가 창설돼 제 역할을 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대표적인 문제는 △재판소의 관할권 △각국 법원과의 관계 △독립적 발의권의 범위 등이다.
관할권과 관련해서는 침략행위도 ICC의 사법대상이 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뉘른베르크나 도쿄재판소에서는 이 죄목에 대해 소추가 이뤄졌으며 많은 나라들은 ICC가 당연히 소추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침략행위에 있어서 개인의 책임에 대한 정의가 분명치 않은데다 이를 소추할 경우 ‘죄형법정주의’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ICC와 개별국가 법원의 관계도 논란거리다. 협약 초안에 따르면 94년 르완다 사태때처럼 개별국가의 사법체계가 무너졌을 때 ICC가 사법권을 갖는 것으로 돼 있다. 만약 ICC가 사법권을 행사할지 여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가지지 못한다면 인도주의를 지키기 위한 국제적 노력은 효력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와 미국은 ICC의 독립적 소추권 행사에 반대하고 있다.
ICC협약은 안보리가 요청할 경우 특정인에 대한 소추를 중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유고 사태처럼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소추 대상이 될 인물과도 정치협상을 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ICC 때문에 협상이 불가능해져서는 안된다는 미국 등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들이나 민간단체는 강대국 중심의 안보리가 ICC 소추권을 함부로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보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와 관련, 관련 위원회에서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을 경우에만 안보리가 소추 제한권을 행사케 하자고 수정제안했다.
각 참가국이 이번 회의에서 모든 문제에 관해 합의를 이룰 것 같지는 않다. 이 때문에 ICC지지자들은 출범에만 매달리다가 ICC가 매우 취약한 권한만 가진 형태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ICC의 출범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미국의 태도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ICC에 적극적이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은 매우 소극적이다.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제시 헬름의원은 심지어 “미국의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ICC 관련 법안의 상정조차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ICC의 출범이 반인류적 범죄를 예방하고 국제법을 강화하는 중요한 한걸음인 것은 분명하다.
〈정리〓허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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