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골목길 한쪽 계단에 늘 그랬듯이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빠진 빨래판을 가져다 놓고 나를 그 옆에 앉힌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갸가 변소로 갔단 말이여…. 그런데 말이여….
어둑어둑 서늘함이 내리던 좁은 골목길, 시장에서 돌아오는 부모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그 곁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봉순이 언니는 그 아이들을 다 모아놓고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모자를 쓴 것처럼 갓이 넓적한 방범등 주위로 어지러이 하루살이 떼들이 깨알처럼 소복이 붙어 날고 있는, 여름밤이었다.
―바지를 내리고 일을 보고 나니깐드루 그제서야 그만 휴지를 가져오지 않은 게 생각난 거여.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디 거시기, 시커먼 변소 밑에서 빨간 손이 쑤욱 나와갖구설라므네… 빨간 종이 주울까아, 파아란 종이 주울까…. 하는 거여.
아아, 봉순이 언니는 왜 이렇게 날마다 무서운 이야기만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봉순이 언니곁으로 바싹 다가 앉는데 남자 아이 하나가 침을 퉤 뱉으며 언니에게 말했다.
―진부한 거 말구 진짜 무서운 걸루다 하나 해줘요.
나는 그 남자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보다 나이가 한둘 많을까…. 아이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의 표정도 살폈다.
전봇대 위에 걸린 외등 아래 희미하게 드러나는 동네 아이들의 얼굴에는 왜 무섭다는 표정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을까, 나도 얼른 얼굴을 펴고 언니곁에서 물러나 앉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맞아, 시시한 거 말구 더 무서운 걸루다….
하지만 나는 그날 저녁 결국 요 위에다 오줌을 싸고 말았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깨어보니 봉순이 언니가 없었던 것이다. 습관적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있는 변소를 생각했으나 도로 자리에 눕고 말았다.
빨간 손이 그 변소 사이로 쑤욱 나오면 어떻게 하나, 나는 어느새 다시 잠이 들어버렸고 그리고는 밤새 그 깊고 컴컴한 화장실 속에서 빨간 손이 나오는 꿈만 꾸다가 축축한 느낌에 눈을 떠보니 요가 젖어 있었다.
물론 엄마에게 들키기 전에 그것을 처리해 준 것은 봉순이 언니였다.
언니는 어머니가 외출하기를 기다려 요를 햇볕이 쨍쨍 쬐는 마당에 내다 널고는 싱긋 웃었다.
―됐지? 그러니께 시방, 언니는 시장 댕겨 올께.
―…….
―증말루다 시장에 가는 거여. 그러니깐드루 집에 꼭 붙어 있어. 혹시 엄마 오시면 나 거시기 갔다고 해. 방금 나갔다고 해야 한다. 알았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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