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노트]고미석/『혼자만 잘살면…』

  • 입력 1998년 5월 30일 20시 02분


“나라 전체가 궁상떠는 꼴 보기 싫어 죽겠어. 지겨워 정말.”

어느 계모임에서 무심코 나온 이 말을 듣는 순간 한 실직 가정의 주부는 분노했다. 교사생활을 하다 그만둔 두 아이의 엄마이자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아온 그는 슬펐다.

남편이 직장을 잃으면서 ‘중산층의 삶’은 신기루처럼 무너졌다. 매일 한가지씩 끊었다. 우유 끊고, 학습지 끊고, 시장 가는 발걸음 끊고. 갑자기 하루하루가 힘겨운 싸움이었다. 시골 시댁에서 담가준 고추장 된장까지 팔기위해 알음알음으로 찾아간 동창계 모임. 그 자리에서 여유있는 주부들끼리 나누는 얘기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인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을 거들어 주지는 못해도 조소하는 세상이 된 것일까? 빈부격차가 다시 커졌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의식의 격차는 더 무서운 것 같다.

별다른 재산없이 임금이 주 수입원인 중산층과 저소득층. 한동안 거품 속에 살았지만 요즘 임금이 깎이고 실업물결은 닥쳐오니 속수무책이다.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는다. 남들은 직장 잃고 생계 걱정하는 마당에 골프장 부킹도, 사람부리기도 쉬워졌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하지만 다수가 불행한데 혼자만 잘 사는 것이 과연 재미있고 또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문득 ‘타인을 늘 자기자신과 분리돼 있는 것으로 보는 데 폭력의 본질이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생태계가 그렇듯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도 서로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내가 여기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의 덕택임을 잊지말아야 한다.

각박한 세상에서 ‘가진 자’의 오만과 ‘못가진 자’의 분노가 쌓이면 어떻게 될까 두렵다. 내 삶의 방식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헤아려보는 마음이 필요할 때다.

고미석<생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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