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 당시 ‘비뇨기’의 ‘비(泌)’를 ‘코 비(鼻)’로 착각, ‘막힌 코 좀 뚫어달라’고 찾아오는 환자까지 있었습니다. ‘오줌외과’로 바꾸자는 자조적 목소리까지 있었어요.”(박원장)
그후 24년이 지난 1998년.
▼엄마, 대학 들어갔어요▼
연초에 대학생 아들과 함께 온 어머니. “아들이 ‘조그맣다’고 불평합니다.” 아들이 재수 시절 “합격선물로 ‘크게’ 수술해준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대학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며 조른데 대한 어머니의 약속이행인 셈.
음낭수정이나 정관복원술을 할 때 전신마취가 관행이던 80년대 초반부터 부분마취술로 통원치료를 가능케 했으며 사전예약제로 진료하는 비뇨기계통의 파이어니어였던 박원장. “의술이 아무리 빨리 발전해도 급속히 깨어가는 환자의 성(性)의식에 뒤지지 않기 위해선 의사의 ‘뇌(腦)혁명’이 필요하다고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아내가 남편을 ‘끌고’ 오거나 장인 손에 사위가 이끌려 오기도 한다.
“남성의 발기부전 치료에 부인 장인 장모에 처형까지 몰려온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부담을 주면 심인성 발기부전이 악화될 수 있다’고 타일렀죠. 새신랑의 발기부전도 ‘가문의 문제’가 된 시대이니….”
▼여자가 좋아한대요▼
얼마전 초등학교 5학년 짜리의 포경수술을 집도한 박씨 부자. 레이저시술을 앞두고 박원장이 말을 걸었다. “수술을 왜 하지?” 수술대 위 어린이의 대답. “여자들이 좋아한대요!” 동원씨가 거들었다. “고추는 아내한테만 보여주는 거야. 약속 안하면 수술 안해준다.”
25년전 자신의 수술대 위에서 부들부들 떨던 그 ‘아이’가 어느새 늠름한 ‘전문가’가 됐다니….’
IMF시대에도 여전한 ‘스트롱 콤플렉스’. 바텐더의 말을 믿고 성기에 파라핀을 주입, 부작용으로 굳어버리자 부랴부랴 병원을 찾은 40대 남성의 수술을 오늘(지난 주말)도 성공적으로 마친 박씨 부자.
“동원아, 손자놈 포경수술도 이 할아비 거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만든 고춘데….” 051―241―5060
〈부산〓이승재기자〉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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