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지명관/국난을 이겨낼수 있을것인가

  • 입력 1998년 6월 1일 07시 29분


지난달 11일 열렸던 임시국회는 이 나라의 의회정치가 하나의 희화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본회의 참석을 종용하는 구내방송이 울려 퍼지고 의장이 호소를 거듭해도 60명, 기껏해야 80명의 국회의원이 모였고 나머지 2백여명은 귀를 막고 본회의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그 시간에 바둑을 두는 의원들도 있었고 회의에 참석했다고 해도 들락날락하는 등 국정을 진지하게 다루려는 열의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여야대결의 정치가 진행되고 있으니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분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묻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한때는 의사당 어느 의원의 방에선가 도박판까지 벌였다고 하니 이번엔 바둑을 두는 정도인데 뭘 그러느냐며 국민에게 양해라도 구하려는 것일까.

▼ 실망스러운 의회정치

그들의 그러한 자세가 지방선거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인데도 우리 국민이 좀처럼 선거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것과 관계가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민은 자기들이 선출한 대표에게 절망하고 있다. 이제 선출하는 대표도 역시 그럴 것인가. 사실 입후보할 때부터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묻고 싶은 경우도 적지 않다. 거기서 옥석을 가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처럼 불성실한 국회의원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 국회 자체 예산을 올리고 입법 활동비니 보좌관의 수니 하는 것을 늘리는데 만장일치의 협력정신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던진 무서운 말을 회상하게 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지배’란 ‘전적으로 범죄를 토대로 해서 생겨나고 또한 끊임없이 범죄를 생산한다’라고 했던 것이다.

지금 이 나라 국민은 국민의 대표로 자인하는, 권력을 가진 분들이 부정(不淨)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부정으로 연명하며 치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의 대표를 선출한다는데 이렇게도 냉담한‘민주주의의위기’에빠져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이 IMF라는 국난 한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다는데 슬픔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정말 우리는 우리 민족사에서 슬기롭게 국난을 극복해왔는지 묻고 싶어진다. 해방후 민족 최대의 국난이었던 6·25전쟁도 우리는 훌륭하게 이겨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일까. 서울을 사수한다고 방송하면서 자기들만 빠져나간 정부, 젊은이들더러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전선으로 나가라고 떼밀면서 자기 자식은 미국으로 보내던 고관, 이런 일은 없었는지. 일선에서 사병들은 굶주리는데 후방에서 후생차량으로 돈벌이하던 장군들은 없었는지. 부산에서는 정치적인 싸움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그 전란이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끝났을 때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 ‘징비록(懲毖錄)’을 기록한 유성룡이 이제는 없는가고 한탄했다. 그는 ‘자서(自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보잘것없는 사람이 어지러운 시기에 나라의 중책을 맡고 위험을 바로잡지 못하고 기울어짐을 붙들지 못한 죄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 국민충정 결집시켜야

1백50만명이 넘는 장정이 직장을 잃고 방황하는데 누가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그 고관대작, 그 국회의원들, 수없는 ‘징비록’을 기록하고 통곡해도시원치않을텐데저렇게 텅빈 국회의사당. 나라의 장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성룡은 그래도 우리나라에 오늘이 있음은 ‘나라를 생각하는 백성들의 충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거기에 이순신 같은 명장을 꼽았다. 오늘 국난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백성들의 나라를 생각하는 충정’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결집시킬 수 있을 것인가. ‘징비록’적인 피나는 반성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염려한다.

지명관(한림대교수·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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