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연극]「김치국씨 환장하다」,씁쓸한 웃음베끼기

  • 입력 1998년 6월 2일 19시 29분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런 개××가 사람 말하는데 먼저 끊어?”

연우무대가 2년만에 새로 무대에 올린 창작극 ‘김치국씨 환장하다’. 극 중반 상사의 전화를 받고 잔뜩 긴장해 있던 수사관이 전화기를 던지며 투덜거리면 젊은 관객들은 까르륵 숨이 넘어간다.

어디선가 낯익은 장면? 지난해 인기몰이를 했던 한국영화 ‘넘버3’에서 깡패같은 검사 최민식이 전화기를 부수며 신경질을 내던 바로 그 장면이다.

동일한 장면은 연장공연끝에 지난달 말 막을 내린 연극 ‘마술가게’에서도 발견됐다.도둑을 잡은 경비원이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더듬거리는 사이 전화가 끊기자 길길이 날뛰는 것.

두 작품 속에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이 장면은 관객이 ‘영화의 그 장면을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삽입된 패러디.

그러나 웃다가도 입가에는 쓴 맛이 남는다. 과연 극 전개과정에서 이 패러디는 꼭 필요했던 것일까.

‘김치국씨 환장하다’는 월남민 김치국씨가 김밥 팔아 모은 돈 18억원이 자기도 모르는 새 북한동포동포돕기 기금으로 기탁돼 곤경을 겪는 이야기. 정색하고 다루기엔 너무 부담스러워진 ‘통일’이라는 주제를 웃으며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지만 정작 주제의식은 앙상하고 웃음만 넘치는 형국이다. 더구나 김치국씨가 북에 두고온 “오마니”를 부르며 탤런트 전원주가 등장한 이동통신 광고를 흉내내는 대목은 시의적절한 풍자라기보다는 기성의 웃음을 베끼기한 것일 뿐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패러디는 주말 저녁 TV채널마다 쏟아내는 버라이어티쇼만으로도 충분하다. ‘젊은 관객을 잡아야 한다’ ‘웃겨야 한다’는 조바심에 그 세대에게 익숙한 영상매체의 웃음을 베끼는 것은 시나리오보다 창작희곡에 더 아이디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아닐까.

젊은 관객들은 눈도 높고 싫증도 빨리 낸다. 손쉬운 흉내내기 보다는 연극만의 풍자성으로 관객의 허를 찌르는 것이 그들의 발걸음을 더 오래 붙잡는 길이 될 것이다. ‘김치국씨 환장하다’는 21일까지 연우소극장. 화∼목 오후7시반 금∼일 공휴일 오후4시반 7시반. 02―744―7090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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