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문화기관 민영화 신중히…

  • 입력 1998년 6월 4일 20시 23분


기획예산위의 국립 문화기관 및 사업의 민간이양 위탁 방침은 문화예술계의 거센 반대론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철회하거나 공론을 모아 신중히 처리해야 할 일이다. 해당 문화기관과 사업을 기획예산위가 일방적으로 지정한데다 내년 실시를 못박아 놓고 새해 예산요구서에 반영하라는 것은 타당성 검토조차 거치지 않은 무리한 방침이 아닐 수 없다.

보도된 기획예산위의 방침은 전국의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국립극장 중앙도서관 현대미술관 자연사박물관 민속박물관 등의 운영과 도서관 정보화, 종합국어대사전 편찬사업 등을 민영화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중 몇가지나 기획예산위의 의도대로 민영화 후 현재보다 운영상태가 나아질지 의문이다.

문화계의 반대 여론이 가장 높은 국립지방박물관의 지방대학 위탁문제만 해도 기획예산위 방침이 탁상행정의 결과임이 쉽게 드러난다.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재정난으로 교육투자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지방대학들이 위탁받은 지방박물관 운영에 힘을 쏟을 리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소중한 문화유산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가 국립지방박물관의 지방자치단체 이관 방침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철회한 것이 지난 2월이다. 그런데 이제 아웃소싱을 명분으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 자체가 유감이다.

다른 문화기관의 경우도 해당 분야의 취약성을 감안할 때 민영화는 시기상조라는 여론이다. 영리와는 거리가 먼 도서관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숫자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도서관마다 도서구입비가 적어 출판계 불황의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다. 민속박물관이나 현대미술관은 각각 단 한 곳에 불과하고 자연사박물관은 이제 겨우 건립단계로 정부가 의지를 갖고 육성해야 할 대상이다.

이들 기관 모두를 계속 국립으로 운영하자는 것은 아니다. 박물관처럼 국가문화유산을 관리하는 기관은 함부로 민간에 맡길 수 없다 해도 다른 문화기관은 여건의 성숙 정도를 보아가며 반관반민의 공기관으로 운영하는 게 효과적일 수도 있다. 특히 공영성을 유지하면서도 사업부문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예술의 전당과 같은 사례도 있는 만큼 공연장 전시장은 3,4년의 장기계획을 세워 민간경영요소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국어대사전 편찬 등 진행중인 사업은 민영화의 득실을 계산한 후 신중히 처리해야 할 부분이다.

당장은 손해보는 듯하지만 길게 보면 국가에 큰 이익을 주는 게 문화다. 예산 당국은 문화기관 민영화를 국영기업체 다루듯 경제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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