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결과에서는 여야간의 승패라는 것이 그들의 세력확대와 축소에는 영향을 줄지 모르지만 국리민복과는 꽤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이다.
공정경쟁이 본질인 민주선거는 정치판에 변화를 가져오고 덩달아 유권자에게는 희망을 주게 마련인 것인데 이번 선거는 철저한 무관심속에 희망은커녕 실망만 안겨준 결과를 빚었다.
▼ 정치혐오-불신감 더해 ▼
지난해말 중앙정치에 보였던 관심과 열기가 냉기로 바뀐 것은 IMF 한파에다 선거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판이 잘못 짜여진 원인으로는 ‘지역주의 선거연합’을 들 수 있다.
지방선거는 지역별 색깔만 선명히 칠한 꼴이 되었고 선거연합이 승패의 절대적 요인이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한국정치의 이 고질은 정당의 의미나 존재이유를 퇴색시켰다. 그것은 후보들의 당내 경선에서부터 싹텄다.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데 이를 깨기를 다반사로 하는 정당의 후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난장에 뛰어들었다. 흑색선전 상대비방 고소고발이 난무했던 이 시장에는 또한 처음부터 정당모자를 갈아 쓴 후보들이 버젓이 등장함으로써 유권자를 모독했다.
이 정당 바꾸기를 떡먹듯이 하는 천민엘리트들 때문에 정치판은 무질서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혐오와 불신만 가중시킨 이번 정치시장의 또 다른 색깔은 후보자의 직업과 학력으로 어림할 수 있다.
농축산 상업 그리고 공무원 출신이 전체의 절반 이상 그리고 고졸 이하의 학력이 3분의 2를 차지하는 그런 정치판이었다.
한편 이번 선거를 계기로 다시 반복하지 말았으면 하는 또 다른 점으로는 후보자의 텔레비전 토론인데 후보자를 마치 초등학생 다루듯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고 양식있는 수준급의 후보자들은 기본 규칙만 알려주고 자유 토론을 하되 사회자는 진행을 순조롭게 하는 정도로 역할을 끝내야 할 것이다.
그러그러한 선거이긴 했지만 그러나 일단 끝났으니 그 결과 정치는 얼마나 나아지고 국난극복은 얼마나 잘 될까에 관심이 쏠린다. 유감스럽게도 나라가 이 꼴이 된데 대한 일차적 책임은 돈을 좇으며 스스로 비천해지고 무책임해진 정치와 고식적인 권위주의와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행정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같은 판이 계속되는 한 그리 희망적이지 못하다.
이유는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선거에 졌다고 해서 야당이 분열하면 그것은 매우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야당으로 존재하기 어렵다고 느끼거나 분파에 익숙지 못한 것은 정치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 사람만 오가고 숫자만 달라질 뿐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정치인의 이합집산이 또 반복될 것이기에 한때의 개편은 오직 정치세력의 변화일 뿐 국리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기는 그 어느 때나 마찬가지다.
셋째, 만일 정당이 3∼5개로 다당제가 된다면 그것은 내각제 정부를 전제로 했을때 바람직한 것인데 정부형태에 대한 합의없이 정당지도가 다시 그려진다는 것은 또 다른 정치낭비를 초래한다.
▼ 당선자 일꾼 각오해야 ▼
목표의 상실, 자유의 상실 그리고 의미의 상실로 특징지어지는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선거도 정치도 행정도 아무런 의미와 희망을 주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한 고비를 넘기며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을 당선자와 유권자가 함께 실천해 대의제의 결함을 보충하는 길밖에 없다. 당선자들은 지방행정개혁을 선도하는 일꾼으로 변신하기 바란다.
김광웅<서울대교수·정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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