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추첨으로 집팔기

  • 입력 1998년 6월 4일 20시 24분


1만원씩 내는 사람들을 모은 뒤 추첨으로 한 사람을 뽑아 18평짜리 빌라를 넘겨주겠다는 신문광고를 냈던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한 주부가 며칠만에 이 계획을 취소했다.

자신의 기발한 집 처분방식이 위법이라는 주위의 지적에 마지못해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경찰이 ‘취소각서’까지 받아갔다는 보도가 있는 걸 보면 여기저기서 꽤 시달린 모양이다.

▼이보다 앞서 부동산가격 급락으로 빚을 지게 된 경기도 안산의 한 건축주도 같은 방법으로 시가 6억원상당의 상가건물을 넘겨주겠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 두 광고가 시중의 화제가 된 것은 착상도 착상이지만 누구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판에 ‘오죽 빚에 쪼들렸으면…’하는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수도 있다. 큰 호응에도 불구하고 오류동 주부가 끝내 손을 드는 것을 보고 실망한 사람도 적지 않을 듯싶다.

▼경찰에서는 추첨식 부동산처분이 사행심을 조장한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법이 그렇다 해도 이번 경우는 좀 심했다는 생각이다. 집은 팔리지 않고 빚독촉은 심하니 그렇게라도 뭔가 재미있게 부동산을 처분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을 굳이 막아야 하는지.

▼이와 비슷한 부동산처분은 실제 미국에서 몇년 전 유행했다. 영화화되기도 했지만 주로 집주인이 제 값을 받기 위해 이 방법을 썼다. 다만 법망을 피하기 위해 추첨 대신 수필콘테스트라는 묘수를 동원한다. 1백달러씩 참가금을 받고 수필을 공모, 당선자에게 부상으로 집을 넘겨주는 방법이다.

바닷가의 집을 처분할 경우 ‘내가 바닷가 집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 등의 제목이 주어진다. 멋있지 않은가. 오류동 주부도 포기하지 말고 다시 도전해보면 어떨까.

〈김차웅 논설위원〉 cha4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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