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스탠더드 라이프]점심시간 따로 없는 영국인들

  • 입력 1998년 6월 4일 21시 29분


영국 런던의 금융가인 시티에서 근무하는 은행원 리처드 웨튼(44)은 바쁜 일과 때문에 일주일에 두번꼴로 점심을 거른다.

의사인 데이비스 왈시(37)는 샌드위치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간호사가 사다주는 샌드위치를 들고 못 다 본 조간신문을 보거나 각종 서류 편지를 읽기도 한다.

대학강사인 리처드 고드윈(34)은 강의시간이 들쭉날쭉이라 정해진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차안에서 샌드위치로 해결하거나 시간여유가 있을땐 카페에 들러 닭튀김 감자튀김을 곁들이기도 한다. 대학 강의시간표에도 점심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영국인에게 점심은 허기를 때우는 정도의 의미 밖에 없다.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같은 것은 없다.

업무상 필요할 때나 친구와 어울릴 때는 식당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는 아주 드문 일. 이 때문에 도심의 고급식당은 점심 때도 텅 비어 있기 일쑤다. 점심 때는 공간을 절반으로 나누어 고급용과 대중용으로 분리해 영업하는 식당도 많다.

반면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가게 앞에는 긴 줄이 만들어질 정도로 붐빈다. 간이술집인 팝도 ‘점심족’들이 즐겨 찾는 곳. 샌드위치 한 조각과 맥주 한 잔을 들고서있는 샐러리맨을 흔히 볼 수 있다. 길거리나 전철안, 공원에서 빵이나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는 사람들도 흔히 만날 수 있다.

영국에선 점심시간을 정해놓고 할 일 없이 허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영국인의 국민성을 점심문화를 통해서 단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래픽디자이너로 중소기업 사장인 알래스테어 스펜서(50)는 컴퓨터 앞에 앉아 샌드위치 한 조각과 쥬스 한 잔으로 점심을 해결하면서 “이렇게 하면 1주일에 5일 일해도 6일을 일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진녕기자〉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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