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35)

  • 입력 1998년 6월 5일 19시 30분


집안이 발칵 뒤집어진 것은 그 며칠 후였다. 새로 계를 부어 산 어머니의 다이아 반지가 사라진 것이었다. 혹여라도 도둑이 들까봐 화장대에도 못 놓아두고 신문지에 아무렇게나 싸서 이불 속에 넣어둔 반지라고 했다. 어머니는 집안의 장롱속을 뒤지고 또 뒤졌고 나중에는 이불이란 이불은 모두 꺼내어 호청을 뜯었다.

―분명히 꽃무늬 차렵 이불 사이에 넣었더랬는데, 내가 왜 이렇게 정신이 없지?

어머니는 하루종일 중얼중얼거리며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어머니는 호청이 뜯겨져 나간 이불들 더미에 앉아 있다가 하얀 솜 부스러기가 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우리 형제들을 불렀고, 넌 못 보았니, 넌 못 보았니, 묻다가 그제서야 생각이 난듯 물었다.

―봉순이는 어디갔니?

점심을 먹고 봉순이언니는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아마 또 아랫동네 세탁소 앞을 왔다갔다 하고 있을 터였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을 지을 무렵 봉순이언니가 대문을 소리나지 않게 살며시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부엌의 찬장까지 뒤지며, 내가 왜 이렇게 정신이 없지, 중얼거리던 어머니는 그제서야 생각이 난듯 봉순이언니를 보고 물었다.

―봉순아 너 내 다이아 반지 못봤니?

―다이아 반지요?

―왜, 내가 그 전에… 아니다 너는 알 리가 없겠구나…….

어머니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듯 했고 그밤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우리집에 새로 들어온 전화로 어머니는 누군가를 불러냈고 어머니의 동창이라는 업이 엄마가 새파란 원피스에 노란 양산을 들고 우리집으로 왔다.

―글쎄, 내가 그런 거 전문이니까, 임자는 시방 아뭇소리 말고 가서 애나 찾아와. 지난 번에 그 넙치 엄마네 식모가 루비 반지랑 진주 목걸이랑 훔친 거 내가 찾아냈잖아. 뭐하는 거야 어여 애 찾아오지 않구.

―설마, 갠 내가 우리 딸처럼 키운 앤데…. 애가 느려터지구 둔해두 그런 짓을 할 깜냥은 없는 애인데

―임자는 남을 어떻게 믿어 믿기를. 세상 변한 걸 알아야지…. 아, 임자두 말은 그렇게 해두 미심쩍으니까 날 부른 거 아니야? 그러길래 진작 어제 손을 썼어야 했는데 늦지나 않았나 모르겠네.

어머니는 영 심란한 표정이었다. 이게 내가 잘하는 짓일까, 하는 망설임이 자꾸 어머니를 머뭇거리게 하는 것 같았지만, 업이 엄마의 말을 들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나를 불렀다.

―짱아, 가서 봉순이 오라구 해라.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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