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권상황은 8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전반적으로 상당히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각지대는 아직도 곳곳에 잔재한다.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명분과 수단을 동원한 사생활 침해, 유흥업소 영세업체 등의 미성년자 고용과 가혹행위, 노동3권 침해, 남녀불평등 사례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인권은 이처럼 국민생활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인권법은 이런 폭넓은 개념을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권리장전이 되어야 한다. 인권위원회도 이름뿐이 아닌 실효성있는 기구로 탄생해야 한다.
우리 헌법이 규정한 인간의 존엄성,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모두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가장 초보적인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조차 뿌리뽑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부터 막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법과 제도는 상당히 정비돼 있으나 수사기관 및 수사요원들의 분위기와 풍토, 관행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가령 피의자를 연행할 때 진술거부권,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반드시 알려주는 간단한 ‘미란다 원칙’조차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수사관의 마구잡이식 반말과 욕설, 가혹행위, 밤샘조사 등의 사례는 아직도 건재하다. 그런 점에서 이종찬 안기부장이 관훈클럽초청 간담회에서 대공(對共)사범의 변호인접견권 보장, 밤샘조사 지양,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죄 적용 최소화 등을 다짐한 것은 관심을 끈다. 잠적한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전경감을 10년째 못잡아 결국 궐석재판을 하게 된 것도 우리 사회 인권수준의 어두운 그림자를 말해 준다.
인권 하면 북한의 인권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경우 차라리 인권부재(不在)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남북대화와 관련해 인권의 거론여부는 정책판단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남한만이라도 인권이 살아 움직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대북(對北)우위를 확보한다는 점에서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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