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 (37)

  • 입력 1998년 6월 9일 07시 02분


―괜찮아, 벗어. 다 니가 무고한 걸 밝혀주려고 그러는 건데 왜 안 벗니? 벗으라니까.

―아줌니 왜 그래유, 지는 아니여유, 아니라니 깐드루 자꾸 그러셔요,그러시길, 시방

―너 자꾸 이러면 경찰에 넘긴다. 콩밥 먹어야 말 들을래?

―글쎄 난 몰라유. 다이언지 타이언지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아야 말을 하쥬.

―그러니깐 벗어봐, 벗어보면 될 거 아니냐? 응?

―왜 이러시는 거예유. 증말… 아줌니 지가 뭘 어떻게 했다구

드디어 봉순이 언니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고 어머니와 업이 엄마의 한숨소리, 한동안 안방은 죽은 듯 정적이었다. 다만, 작년 가을 단풍잎을 넣어 바른 안방의 흰 창호지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후, 두런두런 낮은 소리가 들려오더니 창호지를 팽팽하게 퉁기던 긴장을 타닥, 하고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봉순이 언니가 급하게 입느라 허리춤의 고무줄이 제대로 펴지지도 않은 뭉툭한 팬티를 입고, 나머지 옷으로 대충 몸을 가린 채 거의 반나의 몸으로 안방문을 민 것이다. 대청을 겅중겅중 건너는 언니의 허연 속살덩어리,―그 허연 것은 왜 그때 그렇게 넓고 크고 퉁퉁 부은 것처럼 느껴졌을까, ―가 그대로 내눈에 와서 박히자, 언니와 매일 목욕도 하고 같은 방에서 벗은 채로 잠도 자던 나는 그만 고개를 떨구어 버렸다. 이상하게도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봉순이언니가 얼마나 창피할까, 내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나는 마치 내가 발가벗겨지기라도 한 것처럼 더 작게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봉순이언니는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봉순이 언니는 우리가 쓰는 건넌방으로 급히 건너가 문을 닫았고 잠시후, 엎어져 우는 듯 낮은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봉순이 언니의 울음소리를 나는 그때 처음 들었다. 엄마에게 아무리 야단을 맞아도 울지 않는 언니였다. 조금 눈물을 찔끔거리다가도 내가 들어가 간지럼이라도 태우면 금세 히히 웃던 언니. 그런데 언니가 울고 있다. 벗은 채, 허리춤에 오는 팬티 고무줄이 울룩불룩 허리에 꼬여 걸린 채, 급하게 팬티를 올려 입은 모습으로, 허연 살덩이가 울고 있다.

나는 툇마루에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 팔다리가 빳빳해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장난 인형의 그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는 내 눈은 그저 마당 저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당 저쪽 화단의 목 긴 백일홍의 붉은 빛이 멀어졌다 가까와졌다, 이윽고는 뿌옇게 보였다. 아침에 피었다 시든 나팔꽃의 진 자주빛 꽃이파리, 내가 꽃술을 뽑아서 꿀을 빨아먹던 샐비어의 피빛 꽃이파리들이 금방이라도 흐드득 흐드득, 허공으로 흩어져 버릴 것만 같다가 그것마저 이내 안개에 휩싸인듯 뿌얘졌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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