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엔 추락과 미국의 역할

  • 입력 1998년 6월 13일 19시 40분


일본 엔화(貨)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12일 도쿄외환시장에서 오전 한때 미화 1달러에 1백44.75엔까지 폭락했다. 이같은 엔화가치 폭락은 즉각 세계시장에 충격을 주어 파운드 마르크 캐나다 및 호주달러 등 주요국의 통화가치가 동반하락했다. 뉴욕과 유럽 각국의 주가도 폭락세로 돌아섰다. 국내주가도 300선을 위협받고 있다.

엔이 지금과 같은 추락을 거듭하면 결국은 중국 위안(元)화도 버틸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는 제2의 환란(換亂)에 휩싸이게 된다. 아시아의 위기 재연은 남미와 동구권에 충격을 주어 자칫 개도국 전체를 침몰시킬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런데도 일본정부는 엔화약세에 특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 않다. 이미 내놓은 종합경제대책을 착실하게 추진하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세를 돌이킬 만한 획기적인 방안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차피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할 바엔 엔화약세를 통한 수출증대라도 꾀해보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도 엔화약세를 방관하고 있다. 물론 엔저(低)의 근본원인은 일본의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미국의 사상 유례없는 호황이라는 경제조건의 격차때문이긴 하다. 그러나 엔화 하락에는 미국의 강한 달러에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 엔 약세가 지속되면 미국내 금리인상 압력이 줄어들고 이는 인플레없는 적정성장을 보장해 준다. 또 엔저는 일본에 투자된 외국자본은 물론 일본자금까지 달러화로 몰리게 한다. 고(高)달러정책에는 내년 1월 유러화 공식출범을 앞두고 달러화의 우위를 확고히 해두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엔화의 끝없는 추락은 길게 보면 미국과 일본 모두에 타격을 줄 것이다. 엔약세가 지속될 경우 위안화 평가절하는 불가피해진다. 위안화가 폭락하면 아시아의 몰락과 일본경제의 침몰을 가져온다. 그렇다면 미국경제도 온전할 수 없다. 이것이 ‘일본발 세계공황설’이 고개를 들고 미국 퀀텀펀드 소로스회장이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유다.

미국은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엔화의 끝없는 추락을 막는 길은 미국과 일본의 선택에 달렸다. 일본은 보다 강력한 추가 경기부양대책과 조세감면책을 내놓아야 하며 미일간 금리차를 줄이기 위한 금리인상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미국은 고달러가 가져다 주는 일시적 혜택을 즐기려 들어서는 안된다. 일본과 아시아가 아니라 자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위해서 엔화의 자유낙하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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