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 (42)

  • 입력 1998년 6월 13일 20시 09분


어머니는 한달후 우체국에 다녀와서는, 봐라, 니 집에 니 월급 부쳤다, 하고 작은 종이쪽지를 보여주었고 그러자 그녀는 제 집의 주소가 적힌 그 종이를 무슨 보물이나 되는 양 받아들고는 그날 밤 저녁설거지를 끝낸 후, 늦게까지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부모님 전상서, 라고 시작되는 편지를 쓰고 또 썼다.

그러던 어느 날, 광에 달걀을 꺼내러 갔던 미경이 언니가 지푸라기 꾸러미를 들고 나왔다.

―아줌니, 여기 달걀 지푸라기 버릴라고 보니께 뭐가 들었는갑네유….

풀먹인 호청을 다듬잇돌 위에 개어놓고 물을 뿌려가며 밟고 있던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마당으로 내려왔다.

―뭔데?

어머니의 목소리는 벌써 떨리고 있었다. 짚이는 것이 있는 표정이었다.

―반지 같은디…. 보셔유.

어머니는 미경이 언니가 내미는 지푸라기를 덥석 받아들었다. 그것을 펴는 어머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신문지에 돌돌 싼 다이아반지가 나타났다.

―맙소사, 그래 내가 이걸… 맞아, 이걸 어떻게 한다….

어머니의 얼굴위로 당혹감에 이어 미묘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아낸 반가움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해야하는 난처함, 사라진 봉순이언니와 아무것도 모르는 미경이 언니와 그리고 사실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내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순간 수돗가에서 손을 씻던 나의 눈이 어머니의 눈과 마주쳤다. 봉순이 언니가 아니었구나, 그건 엄마였구나, 생각하는 순간,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넌 또 왜 거기서 물장난을 하구 그러니? 그러길?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고 나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가 손을 씻으려고 대야에 담아 놓았던 물을 쫘악 마당에 뿌려버렸다.

―넌 맨날 집구석에서 뭐하구 있는 거니. 다른 애들처럼 나가 놀지두 않구! 나가 놀아! 어여.

―왜 그래! 난 손 씻구 있었는데!

―얘가 웬 말대답이야…. 나가 놀아! 어서! 미운 일곱살이라더니 일곱살두 안된 게 요즘 왜 이리 말을 안 들어 안 듣긴! 내가 그냥, 속상해 죽겠어. 죽겠다구!

어머니는 매운 손으로 내 등을 내리쳤다. 왜 내가 등짝을 맞아야 하는 줄도 모르고 나는 어머니의 손길에 쫓기듯이 집밖으로 나왔다.

미자언니는 대청마루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아마도 대낮부터 술을 마신 모양이었는지 뺨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몸을 드러내는 스웨터가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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