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쯤 아래쪽에 있는 기왕의 ‘자유의 다리’에서 판문점까지는 30여분 소요되었었는데, 이제 이 통일대교로는 10여분밖에 안걸린단다. 바로 그만큼 서울∼평양의 거리가 20여분 가랑 가까워진 셈인데, 더구나 이 다리를 처음 넘는 것이 소 5백마리를 대동한 정주영씨 일행.
‘정주영 명예회장 방북 소 운반차량’이라고 커다랗게 적힌 5t트럭, 8t트럭 50대가 줄지어 그 다리를 넘어가는 광경부터가 꽤나 기이한 장관이었고 그로테스크하였다.
▼ 남북관계 새지평 열어 ▼
열아홉살 때라던가, 선친께서 소 한 마리 팔아 모셔둔 돈을 훔쳐 가출을 단행했던 그이가 그로부터 근 70년이 지나 소 1천마리와 함께 금의환향을 하는 셈인데, 이번 방북 길에 일단 1차분으로 5백마리를 트럭 50대에 나누어 싣고 들어가는 것이다. 공식적인 반출자는 ‘현대상선㈜’. 반입자는 ‘조선 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그러나 실제로는 정주영씨 개인이 우리 대한적십자사에 기탁한 것. 순수 민간차원 교류의 효시(嚆矢).
이제 바야흐로 이렇게 우리 남북관계는 명실공히 새로운 지평으로 들어서고 있고, 그 첫발을 우리 정주영씨가 내디디고 있는 것이다. 지난 50년간 우리 남북간에 끈질기게도 이어져 왔던 갖가지 ‘시시비비’들, 무겁고도 지당한 말씀들, 말, 말, 말의 세계를 일거에 뛰어넘어, ‘직접성’ ‘직접감각’으로 와 닿게 판을 벌여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직접성’의 차원으로 남북간의 ‘새 판’을 벌이는 데 있어 정주영씨만큼 합당한 사람이 남북을 통틀어 누가 또 있을까.
매사에 ‘그러면 그렇고, 아니면 아니고’, 복잡하지 않고, 늘 분명하고 간명(簡明)했던 정주영씨 말고 누가 또 있을까. “나, 고향으로 가겠다, 먹을 것이 없어 굶는다는 내 고향 기아민들에게 곡식 갖다주겠다, 농사일에 쓸 소 5백마리도 우선 갖다 주겠다, 내가 간척해내어 70만평 규모의 내 목초지에서 길러낸 알토란 같은 내 소들 갖다 주겠다, 그렇게 가장 가까운 길, 판문점을 넘어서 들어가겠다.
도대체 판문점을 왜 못 넘어, 나는 기어이 판문점을 넘어서 들어가겠다, 복잡하고 어려운 소리들일랑 그만두자, 나의 지금 형편이 충분히 그럴만 해서, 내 고향, 통천 사람들의 그 어려움을 풀어주겠다는데, 감히 누가 내 앞을 막아, 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이 이 내 앞을 막아, 조건? 조건 없어, 그런 어려운 소릴랑 난 몰라, 모른대도….” 아아, 이 ‘직접성!’.
취재차 판문점까지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필자도 들은 이야기여서 정확도 여부는 장담할 수 없거니와, 지난 연초에 정명예회장은 자기 휘하의 그 그룹 핵심간부들과의 간담회 석상에서, 금년 안으로 소 5백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들어가겠다고 느닷없이 선언을 하자, 그 자리에 있던 먹물깨나 든 일부 간부들은 “아뿔사, 우리 회장께서 이젠 치매까지 오시는가 보구나”하고 내심으로 딱하게 여겼다고 하는데, 보라! 바로 6월에 들어서 정명예회장은 끝내 이 일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러 소리 필요 없이 그 투명하고 간명한 단순성. 질기디 질긴 담담함. 그리고 질박함.
자 어떤가. 바야흐로 지난 50년간 묵어온 우리 남북 관계가 바람직하게 풀리기 시작하는 그 ‘직접성’의 첫 물꼬를 저렇게 정주영씨가 트고 있는 것이다.
다만, 판문점 경내의 휴전선을 트럭에 실려 줄줄이 넘어가는 소들의 그 하나같이 무심하고 뚜웅한 착한 눈매들, 더러는 우어엉 우어엉 하고 울며 넘는 소들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대표적인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 알싸한 부러움 같은 것을 안 느낄 수 없었다. 이것이 어찌 필자 한 사람만의 아픔일 것인가.
▼ 정주영! 그였기에 가능 ▼
뒤이어 오전 10시 임박해서 회색 모자에 코트 차림으로 6666번 승용차에서 내려 환송하는 우리들에게 젊은 사람처럼 한바탕 두 팔을 흔들고 판문점 퀀셋 안으로 모습을 감추는 84세의 정씨의 뒷모습에서 나는 일말의 아쉬움 섞어 또 하나의 정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농립모에 베잠방이에 종아리가 그대로 드러난 짧은 홑바지 차림의 18세 소년으로 황소 한 마리를 끌고 ‘이랴아 끌끌끌’하고 논두렁 길을 따라 북으로 넘어가는 그이의 뒷모습을.
귀가 길에 들으니, 정명예회장은 트럭에 실리는 그 소들에게 ‘소뚜레’를 하려고 하자 작업반원들에게 그러지 말도록 말렸다던가. 낯선 땅으로 실려가는 소떼에게 나누는 정이라고 나는 혼자서 가만가만 머리를 주억거렸다.
이호철<소설가·경원대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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