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언니 (47)

  • 입력 1998년 6월 18일 19시 12분


―글쎄 업이엄마두 가본지가 하두 오래돼놔서 여긴가 저긴가 하구, 둘이서 주소도 없는 광주 그 산동네를 헤매는데, 글쎄 우리 애들 옷이 빨랫줄에서 펄럭이는 게 보이잖아요. 고 계집애가 옷을 가지구 도망쳐서는 벌써 지네 동생들 입히려고 빨아서 널어놓은 거라. 그래, 고생도 안하고 집을 금방 찾았지.

―그래? 미경이도 거기 있구?

―있지. 그럼 지가 어디가요? 내가 문으로 떠억 들어가니까, 고 계집애가 시래기를 말리고 있다가 얼굴이 하얘져갖구는 도망을 치는 거야. 잡아서 경을 치려다가 좀 참기로 하구, 동생들한테 물어보니깐드루 지 아부지 어머니가 역전앞에 일 나갔다길래, 업이엄마랑 둘이서 기다렸지 뭐. 세상에 코딱지 만한 집에 한 예닐곱 가구는 살까, 지붕은 허리를 반은 굽혀야 들어 갈 수가 있구, 그런 집 단칸방에 애 일곱하구 두 양주가 살고 있더라구요. 부모라구 이제 우리 나이보다 좀 젊을까…. 왜, 우리 저 윗동네 살 때 그 방의 한 반만한 방에 말이예요.

―그럼 부모도 만나 봤겠군. 뭐라고 그래?

―뭐라기는? 미경이 말이 주인 아주머니가 못 입는 옷이라구 줬다 해서 자기네는 그런 줄 알았다 하지. 말도 안되는 소리, 보면 모르나? 세상에 어떤 주인이 식모한테 새옷 주어 보내겠어요? 더구나 애 입는 교복까지 말이야. 업이엄마가 미안하다구 나보다 더 펄펄 뛰구, 그래두 사람들이 무표정이야, 무표정. 지 딸년이 도둑질을 해서 잡으러 왔는데 말이예요, 나 참 이해가 안돼, 아무리 가난하고 막 돼먹은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그래 영아 교복은 왜 가져갔대?

―몰라요, 내가 왜 그랬냐니까, 미경이 고것이 고개를 숙이고 금방 뚝뚝 웁디다. 바보같은 것이 교복만 입으면 중학교 가는 줄 알았는가봐요. 그래 나오려는데 참 그 부모란 사람들은 미경이를 도로 데려가라는 거예요. 기가 막혀서. 하기는 내가 다른 집보다 월급두 많이 주고, 그것도 제 날짜에 꼭꼭 집으로 부쳤는데… 뻔뻔해서 말이 안 나오더라니깐요. 내가 한마디 해주려다가 업이엄마 면도 있고 그래서 참았지.

―모르니까 그랬겠지. 더구나 시골 사람들이니 그럴 수도 있잖아.

―그렇긴 뭘 그래요? 그래도 거기 광주도 대처고 사람 사는 일이사 다 같은 거지. 뻔뻔해서 참…. 내가 그 부모들 뻔뻔하구 미경이년 괘씸해서 그냥 올려다가 그 밑에 어린 것들이 얼마나 안됐는지, 막내로 본 아들인지 그 핏덩이는 기저귀가 없어서 낡은 솜바지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똥오줌을 받아내고 있습디다. 그 좁은 방에 애 오줌내는 진동을 하고…. 동생들이라고 입성 변변한 놈이 단 하나도 없고. 그래, 니들이 무슨 죄겠니 싶어서 좀 낡다 싶은 옷은 떨어뜨려놓구 왔긴 왔어요.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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