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병섭/병무비리를 없애려면…

  • 입력 1998년 6월 23일 19시 46분


병역면제 부대배치 등과 관련된 병무비리 수사결과가 청탁자 명단 일부와 함께 발표됐다. 군사령관을 포함한 현역군인과 병무청 직원, 그리고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청탁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으며 병무청 모병연락관은 이러한 병무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5억4천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원용수(元龍洙)준위를 중심으로 영관급장교와 군의관, 병무청 관계자 등이 조직적으로 벌여온 이번 병무비리는 청탁내용별로 아예 공정가격을 매겨 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은 다시 드러난 ‘유전면제 무전입대(有錢除 無錢入隊)’의 병폐앞에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92년부터 5년 동안 병무청 자체 감사를 통해 병무 비리로 징계 등 신분상 불이익 처분을 받은 직원이 무려 1천7백8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언론보도는 이번 사건이 그간 지속되어온 병무 비리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비리의 빙산 가운데 일부분일 뿐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병무비리는 군의 사기 및 기강만이 아니라 국가사회 전반의 기강을 흔드는 범죄행위이므로 이번 사건의 처리는 물론이고 드러나지 않은 병무비리도 근절하고 앞으로 이러한 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방부는 당장 병무비리의 핵심으로 드러난 현역 군인의 병무청 모병관 파견제도를 없앤다고 한다. 또 병무와 선병(選兵)및 배치관련 담당자를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것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현역군인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비리가 없어지겠는가 또 주기적으로 담당자를 교체하면 전문성 제고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병무비리도 다른 부정 및 비리 대책과 마찬가지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관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비리와 부패를 통제하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는 부패의 유인과 기회를 줄이는 것이고, 둘째는 부패 행위시 적발 가능성을 높이며, 셋째는 적발되면 확실히 처벌받도록 하는 것이다.

먼저, 군복무를 하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는 한 병무비리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돈으로 병역을 면해 보려는 수요가 있는 한 공급도 생기게 마련이고 이 양자의 결합에서 부정과 부패가 발생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고위관료 등 우리나라의 사회지도층 인사들 중에 병역면제나 방위병근무 받은 사람들이 많은데 이와 같이 국가를 위해서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면 누가 병역의 의무를 피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이 점에서 각종 선거에서 입후보자나 그 가족의 병역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대단히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앞으로 선출직뿐만 아니라 다른 고위공직에도 병역 사항이 검토대상이 되어 오히려 병역의무를 마치려고 노력하게 되는 그런 시대가 빨리 와야 하겠다. ‘신분이 높을수록 사회적 의무도 무겁게 진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정신을 갖는 것이 바로 병무비리가 자라기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둘째,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려는 의사가 있는 경우에도 이것이 적발될 위험이 있으면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이 줄어든다. 결정과정의 공개와 투명성 확보 등은 적발될 확률을 높인다.

그런 점에서 국방부장관이 “훈련병의 부대배치와 관련해 훈련병 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산을 통해 근무부대를 배치하겠다”는 것은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 측면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패는 공급자와 수요자의 합의에 의해 은밀히 진행되므로 적발하기 어렵다.

따라서 부패에 연루된 당사자나 부패를 인지한 제삼자의 신고는 부패의 적발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 이런 측면에서 공익을 위한 비리 신고자를 잘 보호하면 부패를 예방하는 데도 효과가 크다.

셋째, 적발되면 확실히 처벌받는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부정한 재산의 몰수를 통해 부패와 비리가 오히려 패가망신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은 우리 사회가 부패행위자에 대해 너그럽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뀌면 사정을 하고 그리고는 금방 사면을 하고 사면된 자는 정계로 복귀해 마치 자기가 개선장군인 듯 행세할 수 있는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는 한 부패와 비리의 청산은 어렵다.

김병섭<서울대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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