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은퇴하는 김수환추기경

  • 입력 1998년 6월 23일 19시 46분


29일 이임을 앞둔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서는 마지막으로 22일 ‘수도자 평신자와의 감사미사’를 집전했다. 68년 4월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후 꼬박 30년을 서울의 한가운데 명동 언덕에서 현대사와 함께 산 김추기경의 은퇴는 교회법의 정년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는 하나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김추기경이 ‘큰 어른’인 것은 꼭 필요한 때 꼭 필요한 말로 국가와 사회의 나아갈 바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침묵하던 긴급조치 시절은 물론, 강압적인 5공치하에서도 그는 “궁극의 목표는 민주화”라며 “어둠의 끝이 보인다”고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다. 명동성당이 이른바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게 된 것도 김추기경의 용기와 소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김추기경은 22일 감사미사 강론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해 줄 것’이라는 성구를 신도들에게 최상의 선물로 드리고 싶다며 마지막 메시지로 남겼다. 천주교신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시점에서 음미해야 할 경구가 아닐 수 없다. 오늘 우리가 겪는 IMF체제의 고통도 거짓과 허례의식이 판치는 세상에 갇혀 살아온 결과임을 생각하면 추기경의 마지막 강론은 더욱 크게 울려 온다.

▼현대사를 되돌아볼 때 사표로 삼아 존경할 만한 원로가 귀한 것은 우리 시대의 불행이다. 그러나 지난 한 세대 김추기경과 같은 ‘어른’이 우리와 함께 살았다는 것은 국난 속의 한국을 위한 ‘축복’으로 여겨진다. 비록 은퇴는 하지만 꼭 필요한 때 꼭 필요한 말로 나라의 앞날을 열어가는 데 앞장서야 할 김추기경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임연철<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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