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역시 도발이었다

  • 입력 1998년 6월 26일 19시 11분


속초 앞바다 그물에 걸린 북한군 잠수정은 조난 표류가 아니라 침투도발인 것으로 드러났다. 휴대용 무반동총 등 지상전투용 무기가 다수 발견됐다. 승조원의 집단자살도 특수공작원들의 최후행동 양태다. 정부는 처음에 사건의 진상을 표류 정찰활동 침투 중 하나일 것이라면서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 성급한 판단을 경계했다. 혹시 표류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국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도발이었다.

정부는 이제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지양, 화해 교류협력이 새 정부의 대북 3대원칙이다. 이 중 첫번째인 도발불용이 이번 잠수정 침투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정부의 균형있는 대북정책 실천의지와 위기관리 역량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국가안보회의 상임위는 대북규탄을 결의하고 국방부는 북한측의 해명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매우 기본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이 사건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에서 다루어져야 하지만 북한이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엔사―북한군간 장성급대화 소집을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 유엔사는 우선 북한측에 도발을 시인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북측이 훈련중 표류라는 억지주장을 계속한다면 남북공동조사를 제의하고 거기서 입증하면 된다. 공동조사에는 유엔사도 참관하는 것이 좋다. 북측이 도발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해야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끌어낼 수 있다.

북측의 책임자 처벌없는 재발방지 약속은 무의미하다. 96년 강릉 앞바다 잠수함침투사건 당시 북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거짓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번에는 적당히 넘어가선 안된다. 이것이 납득할 만하게 이루어질 때 승조원 시체 9구를 넘겨주고 남북 군사당국간 신뢰구축 노력을 기약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군사적 사건과 무관하게 계속 밀고나간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고위인사들은 사건발생 후 일관되게 대북 햇볕정책의 불변방침을 언명했다. 그러나 이 정책이 북측 도발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겉으로 미소지으면서 뒤로 땅굴을 파는 북한의 이중성을 국민이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아무리 햇볕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려 해도 국민여론이 용납 못하는 상황으로 빠져들지 모른다. 이는 남북 어느쪽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대북정책을 좀더 정교하게 다듬고 진행중인 대북 교류사업의 속도조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침 진행중인 클린턴―장쩌민(江澤民)의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잠수정 도발문제가 심각하게 다루어지도록 정부는 외교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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