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55)

  • 입력 1998년 6월 27일 20시 10분


봉순이 언니는 마치 서너살박이처럼 다리를 쭉 뻗고는 울기 시작했다. 화단에 서서 꽃씨를 받고 있던 나도 그렇게 울고 싶었다. 하지만 봉순이 언니의 울음은 그칠 것 같지 않았고 어머니는 대문의 빗장에 한팔을 기대고 깊이깊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결국 어머니와 함께 나가 한나절집을 비웠던 봉순이 언니는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어머니는 미역국을 끓여 언니에게 먹였다. 저녁상에서 봉순이 아프다,라는 말을 들은 언니와 오빠는, 소같은 봉순이 언니도 아플 때가 있는 거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을 뿐, 곧 자신들의 방으로 가 틀어 박혔고 봉순이 언니는 머리맡에 하얀 약봉지를 놓고 누워 잠만 잤다.

봉순이 언니가 돌아온 이 며칠, 나는 봉순이 언니가 떠났던 그 여름보다 밤이 되는 것이 더 무서웠다. 봉순이 언니가 없었을 때는 그리움과 애련함으로 가득하던 우리방안의 공간이 봉순이 언니가 돌아오자 풀 먹인 호청처럼 서걱거리게 되었던 것이다.

―들어가서 봉순이 약먹고 자라고 해라”

어머니가 내게 물컵과 물병이 담긴 쟁반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들고 우리방으로 들어섰다. 봉순이 언니는 라디오를 조그맣게 켜 놓고 누워 있었다. 눈을 멀거니 뜨고 두 손은 말없이 가슴에 모아 깍지를 낀 채였다. 본체와 크기가 거의 같은 커다란 건전지를 검은 고무줄로 칭칭 동여매놓은 라디오에서는 이미자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엄마구름 아이구름 정답게 가는데 아빠는 어디갔나, 어어디서 살고 있나, 아아아 아아아아 우리는 외로운 형제, 길잃은 기러기…….

―엄마가 약 먹으래”

내가 쟁반을 머리맡에 놓으며 말했다. 봉순이 언니는 한나절만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해쓱해진 얼굴로 나를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핏기없는 입술에는 아직 다가시지 않은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언니가 화를 내거나 씨익 웃지도 않고 나를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언니는 잠시 후, 눈길을 내리깔더니 끙하고 일어나 봉지에서 부시럭부시럭 약을 꺼내 들었다.

나는 아까부터 그러려고 망설였지만 하지 못한 일을 하려고 용기를 내었다. 그건 내 주머니에 있던 요즘 새로나온 색색이 왕눈깔 사탕을 주려는 것이었다. 수박맛이 나는 그 사탕은 한개에 오원이나 하는 것이었다. 아까 엄마와 언니가 외출했을 때 나는 구멍가게로 뛰어가서 그것을 사다가 딱 하나만 먹고 한개는 먹고 싶은 걸 참고는 남겨두고 있었다. 언니가 그 쓴 약을 먹는 것을 기다렸다가 나는 그 사탕을 내밀었다. 내가 약을 먹을 때 언니는 언제나 하얀 설탕을 한숟갈 주곤 했었던 것이다. 언니는 이게 뭐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그 사탕을 입에 반쯤 넣고 어금니로 있는 힘을 다해 부순 다음 반쪽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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