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문화마저 무너지면…

  • 입력 1998년 6월 28일 20시 43분


IMF체제 이후 어렵지 않은 분야가 없지만 ‘문화의 세기’로 전망되는 21세기의 문턱에서 우리 문화 예술계가 좌초 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은 특별히 우울하게 들려온다. 선진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경제불황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어려울수록 문화 예술은 더욱 풍성해져 각박해지기 쉬운 사람들의 정서를 달래고 풍요롭게 해줘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통계는 문화가 풍성해지기는커녕 붕괴중임을 나타내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문화관광부가 당정회의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객석 9백석 이상 주요 공연장의 1·4분기 월평균 공연수는 15회로 지난해의 28회에 비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평균 객석 점유율도 70%에서 40%로 떨어졌다. 공연장뿐만 아니라 등록된 잡지의 50%가 폐간됐고 음반 비디오 PC게임의 판매량도 30%가 줄었다고 한다. 경제위축에 따른 대기업의 투자 기피로 국산영화 제작편수는 지난 5월까지 15편에 불과해 스크린 쿼터도 채우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통계가 보여주는 숫자는 대중예술이 포함된 것이어서 순수 문화 예술의 상황은 더욱 심각한 실정임을 짐작케 한다. 문화예술행사 기획자들은 정부에 1백억원의 긴급자금지원을 호소하며 지금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순수 문화 예술은 고사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당장 경제기반 자체가 무너져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한가하게 웬 문화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는 한 국가의 정체성(正體性)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한번 기반이 붕괴되면 복구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농부가 씨앗을 아끼듯 국가는 멸망하지 않는 한 ‘문화의 불씨’를 꺼뜨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더구나 세기말의 선진국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문화산업은 21세기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될 게 틀림없다.

문화 예술계가 고사의 위기를 호소하고 있는 현실과 비교할 때 정부의 대책은 ‘자구책 지원’ ‘건전유통질서 유도’ ‘세제개선 추진’ ‘규제완화’ 등 원칙론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다. 부도위기의 출판계 호소에 문예진흥기금 2백억원을 지원한 정부가 왜 순수 문화 예술계를 위해 구체적 계획을 세우지 않는지 의문이다.

3천억원이 적립돼 있는 문예진흥기금의 상당액은 문화 예술계가 요즘같은 때 쓰기 위해 모은 것이다.기반상실 위기에 있는 문화 예술계를 위해 정부는 정교한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협찬이 전무하다시피한 현실을 감안, 정부예산에서의 지원도 절실하다.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붕괴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분야가 문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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