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의 강의

  • 입력 1998년 7월 1일 19시 40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고려대 인촌(仁村)기념강좌 특별강연은 형식과 내용의 양면에서 몇 가지 특기할 만했다. 형식에서는 김대통령이 당선자 시절부터 TV를 통해 선보인 ‘국민과의 대화’의 연장이었다.

대통령이 국민 속에 뛰어들어 정부시책을 설명하고 국민의 소리를 듣는 직접대화는 열린 정치, 쌍방향 정치를 향한 의미있는 출발이다. 이번으로 세번째인 김대통령의 이런 정치방식은 계속 발전시킬 가치가 있다.

가장 주목할 것은 김대통령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했고 그것이 TV로 생중계됐다는 점이다. 과거 이 땅의 대학은 반정부 운동의 중심으로 인식될 만큼 권력에 반항해 왔고 권력 또한 대학을 위험한 집단쯤으로 간주해 왔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학생들에게 등 돌림을 당한 이후 발길을 끊었던 아픈 역사가 대학과 권력의 굴절된 긴장관계를 말해준다.

그런 배경에서 볼 때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김대통령이 대학을 찾아 강연하고 학생들과 토론한 것은 이 나라의 민주화와 정치발전을 상징하는 정치사적(政治史的) 사건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그것도 민족근대화의 선각자 인촌 김성수(金性洙)선생이 일제치하에 세운 민족의 사학(私學)에서 ‘민족’을 주제로 강의한 것은 매우 시사적이고도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내용에서 김대통령은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기보다 기존 정책의 바탕에 깔린 자신의 철학과 의지를 설명해 국민의 이해를 도왔다. 특히 민족의 저력을 경제국난 극복의 원동력으로 뿜어올리려 한 김대통령의 시도는 국민의 고통분담과 개혁동참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

김대통령은 동아시아 대륙에 ‘혹’처럼 붙은 작은 반도의 우리 민족이 몽골족이나 만주족과 달리 중국에 쓸려들지 않고 독자성을 유지해온 그 저력을 되살려 지금의 국난을 함께 극복하자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경제난 해소 등을 위한 노력을 설명하면서 새 정부의 실적을 열거하기도 했다. 국민은 정부가 하는 일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나친 업적선전이 국민체감과의 괴리를 낳고 국민의 긴장감을 둔화시킬 수도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김대통령은 재임중에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고 힘주어 말했지만 시간의 제약 때문인지 구체적 대안제시가 없었던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김대통령은 대북 햇볕정책은 유화정책이 아니라며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해 국민의 불안을 덜어주려 했다. 그러나 북한이 햇볕정책에 방어적으로 나오거나 정부의 기대와 다른 반응을 보이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하지 않았다. 사회 일각의 불안과 혼선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책을 더욱 다듬고 알기 쉽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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