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평/자치단체장의 시대적 소명

  • 입력 1998년 7월 2일 19시 30분


제2기 민선 자치단체장 선거를 통해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는 이제 그 기틀이 완성되었다. 이번에 당선된 자치단체장들은 온전한 4년 임기의 기관장을 수임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지방자치제가 본 궤도에 진입한 셈이다.

이전과 비교해 한층 더 성숙한 선거문화를 통해 당선된 지방의회 의원들과 단체장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또한 선거에서 낙선한 분들에게도 위로와 함께 격려를 보내고 싶다.

새로 당선된 자치단체장들은 특별한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다.

▼ 지역보다 나라가 먼저 ▼

이제부터 자신들의 입지와 판단이 역사에 기록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 안목에서 자치단체를 이끌고 나가야 할 것이다.

그분들께 어렵지 않은 몇가지 시대적 소명에 철저하기를 간곡하게 당부드리고 싶다.

첫째, 나라가 있고 지역이 있다는 아주 쉬운 명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간직하기 바란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표출된 외환위기와 그로 인한 나라 경제의 소강상태는 국민 모두에게 심각한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자치단체장의 역할이 자신을 선출해준 지방의 이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겠지만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에서 나만(또는 우리만) 살겠다고 나서면 나라 전체가 공멸(共滅)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치단체장들은 자기 지역을 위한 일이 나라 전체에 어떤 의미와 영향을 주는지를 그 어느 때보다 더 용의주도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자치단체장들은 지역주민의 의견을 겸허하게 들어야겠지만 한 지역의 지도자라면 단순히 지역이익의 목소리에 따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는 발상으로 지역주민을 선도해야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이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일수록 지역의 이익에 앞서 국가적 대의와 조화하는 판단을 일구어내고 주민을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지방정부의 정책결정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척도는 장기적 비전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모든 자치정부의 선택기준을 경제에만 치중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기 바란다.

경제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강박관념에 쫓기다 보면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소홀히 하기 쉽다.

예컨대 아름다운 자연환경의 보전, 문화유산의 보존 또는 공공시설의 안전과 같은 가치들은 지난 개발연대에도 상당히 무시되었다. 우리네 주변에서 뼈대있는 가정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들의 교육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답게 사는 일에 소홀하지 않으며 가풍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쓸만한 지방자치를 일구어가자면 경제적 고난을 극복한 뒤에 올 사회까지 고려하는 장기적 비전이 필수적이다.

경제적 이해당사자들은 단기적 이익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정치지도자는 세월이 더할수록 값을 배가하는 정책을 선택해줄 소명을 안고 있다.

셋째, 이제 지방자치단체는 행정 개혁의 전시장이어야 한다. 자치단체장은 개혁의 기수여야 한다. 행정 전반에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당위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21세기 도래를 앞두고 세계화 정보화와 함께 조직의 운영방법이 통째로 변화하지 않으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없다고 한다.

개혁의 핵심은 새로운 정보관리기술에 따른 조직운영 원리의 변화다.

자치단체장 자신들이 정보화의 의미를 이해하고 체득해야 하며 자치단체 조직도 하루빨리 개혁시켜야 한다. 일선 행정기관이 변화하지 않으면 실제로 개혁은 실현되지 못한다. 자치단체장이 개혁의 기수로 나서지 않으면 그만큼 변화의 속도는 느려진다.

▼ 개혁의 관리자 되어야 ▼

우리는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모든 위기가 저절로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그만큼의 창의적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발상이 시험될 수 있고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개혁에의 참여로 유도할 수 있는 역동성을 만들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자치단체장들은 바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개혁의 관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 시작하는 제2기 민선 자치단체장들이 임기를 마칠 때 우리 모두 한껏 성숙한 지방자치에 박수를 보낼 수 있기를 고대한다.

김영평(한국행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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