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칼럼]최영하/위상 높아지는 중앙아시아 한인들

  • 입력 1998년 7월 3일 19시 26분


아직도 구 소련 중앙아시아에 사는 한인들(고려인)이 소련 붕괴 후 민족적 종교적 탄압을 받아 그들이 살았던 연해주 극동지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일부 시각이 있다. 이는 현지 한인동포들의 생각과는 매우 거리가 먼 것이다.

한인들은 구한말 19세기 후반부터 두만강을 넘어 제정 러시아 땅인 연해주에 살기 시작했다. 그 수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 우즈베크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을때 대략 18만명에 달했다. 이들은 당시 만저우를 점령하고 있는 일본군과 연해주의 소련군이 우수리강을 사이에 두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희생물이 되어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 집단농장의 목화밭에 뿌려져 온갖 애환을 겪으며 60년을 살아왔다.

오늘날 우즈베크의 한인 동포들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공로자들이다. 구소련시절 집단농장의 영웅 칭호를 받은 6백여명 중 3분의1이 한인이었으며 이들이 일군 ‘폴리타젤 농장’ ‘김병화 농장’ ‘베루니 농장’ 등은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가 다녀가는 VIP코스의 모범농장이었다.

지금도 이들 농장에 가면 거친 손마디에 깊은 주름이 팬 그때의 노인들을 볼 수 있다. 이분들이 치른 희생의 대가로 오늘날 그들의 손자들은 이 나라의 훌륭한 시민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22만 한인동포 중 17만명이 이 땅에서 태어난 2,3,4세들이며 이들은 지금 소련 붕괴 후 시장경제로 가는 신생 독립국 국민으로서 균등한 기회의 출발선에 서 있다.

한인들은 이제 소련시절 정체적인 집단농장 중심의 농촌생활에서 도시 중심의 시장경제 생활로 옮기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은 그렇다.

우즈베크의 한인들은 여러 소수민족 중 가장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하며 재주가 많은 민족으로 소문나 있다. 소련의 몰락과 함께 신생 독립국으로 출발하면서 이슬람과격주의의 침투와 민족분쟁을 국가 안보의 제1 위협요소로 꼽고 있는 우즈베크는 온건 이슬람교국가이면서 다민족 공존정책을 쓰고 있다.

1백20개 소수민족이 사는 이 나라는 각 민족이 고유문화와 언어를 지켜가도록 법으로 보장해 90여개의 각 민족 문화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이중 25개가 한인 문화단체(고려인문화센터)로서 전국적인 조직을 갖고 있다.

어느 민족에나 정치적인 탄압은 없다. 특히 우즈베크에는 대우 갑을 등 80여개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1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며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 한인 동포들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그들은 이제 다시 되돌아갈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살고 있는 땅이 제2의 조국이며 내 땅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소수의 한인들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개인적인 선택으로 재이주를 했을 뿐이다. 낯선 극동으로의 재이주로 할아버지의 희생을 되풀이할 생각은 없는 것이다.

우리도 그들이 새로운 시련을 맞게 하기보다는 이 나라의 훌륭한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줘야 한다.

최영하<주우즈베크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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