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5’중에서는 인도네시아가 팽창정책, 고정환율제 회귀 등 반IMF노선을 걷다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되는 파국을 맞았다.
말레이시아는 지금까지 IMF의 경제주권침해를 비난하면서도 가장 강도높은 ‘IMF식 긴축정책’을 채택해 국제적인 신뢰와 환율을 지킴으로써 IMF의 지원을 사전배제하는 매우 독특한 노선을 걸어왔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7월들어 50억링기트(미화 12억달러) 규모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부활시킴으로써 그간 유지하던 재정긴축 여신억제 물가안정 고금리정책을 포기하고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나섰다.
안와르 이브라힘 재무장관은 “이번 재정투자 확대는 콸라룸푸르 모노레일 건설과 기타 중요한 인프라 프로젝트 등 그간 중단돼 온 공공사업을 부활하기 위한 초기자금지원의 성격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팽창정책으로 파산직전의 위기에 몰려있는 일부 건설사들의 숨통은 일단 트일 전망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강력한 긴축정책에도 불구하고 링기트화가 작년 7월에 비해 40% 가까이 평가절하됐고 주가도 떨어지고 있다. 경제는 올 1·4분기에 1.8%나 축소됐다. 이 때문에 경제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말레이시아의 방향전환은 국내적으로는 안와르 재무장관에 대한 마하티르 모하메드 총리의 정치적 승리라는 측면이 있다. 그동안 안와르 장관과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IMF처방을 지지하면서 내부개혁을 주도해온 반면 마하티르 총리는 저금리 및 여신완화를 주장해왔다.
IMF식 긴축처방에 대해서는 그동안 제프리 삭스 미국 하버드대교수, 앨리스 앰즈덴 MIT교수, 조지프 스티글리츠 세계은행부총재 등이 강도높게 비판해왔다.
그러나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은 말레이시아의 방향선회에 대해 “긴축을 풀면 환율 평가절하의 위험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마하티르 총리는 반IMF정책으로 해외자본이 떠날 것을 우려해 2일 “말레이시아는 외국의 진지한 투자가에게는 아직도 매력적인 투자처”라며 “말레이시아 진출에 관심이 있는 외국기업들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말레이시아의 반IMF 실험이 성공을 거둘지는 IMF에도 큰 관심사다.
〈허승호기자·콸라룸푸르AP연합〉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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