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최연숙/『선풍기만 보면 아버지그리우시죠』

  • 입력 1998년 7월 8일 19시 35분


▼고향의 친정어머니께

엄마.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은 찾아왔어요. 무더운 날씨에 건강은 어떠신지요. 오늘도 들에 나가 일하고 계시겠지요.

오늘 너무 더워 선풍기를 꺼냈어요. 지난 여름의 묵은 때가 끼어있어 날개를 떼내 깨끗이 닦았답니다. 그러다 저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어요. 엄마. 그 일 생각나세요. ‘선풍기 사건’ 말이에요. 난생 처음 아버지와 함께 도시에 나갔다가 가게에서 선풍기가 빙빙 돌며 바람을 내는 걸 보고 “그 풍선기 참 잘 도네”라고 했다가 “무식하기는. 저게 어째 풍선기야 선풍기지”하며 아버지가 면박을 줬던 일요.

아버지는 왜 그렇게 엄마에게만 이해심이 부족했는지 모르겠어요. 길거리의 낯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 쩔쩔맸을 엄마를 생각하면…. 그 뒤로 엄마는 아버지와 정답게 외출 한번 못하셨지요.

엄마도 올 여름에 선풍기를 꺼내어 닦으시며 저처럼 아버지를 그리워하셨겠지요.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엄마에게 여러번 그랬을 거예요. “이 사람아. 그게 아니고 이거야. 무식하기는…”이라고요.

엄마 아무리 무안을 주고 혼을 내더라도 아버지가 우리 곁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최연숙(서울 도봉구 도봉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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