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현장 지구촌리포트 19]캐나다 「전자정부」

  • 입력 1998년 7월 8일 19시 52분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한국에서는 이미 구경하기 힘들어진 ‘포니2’ ‘스텔라’가 아직 시내를 누비고 다니는 것을 보면 신기술이나 신제품에 호들갑 떨지 않는 이곳 사람들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캐나다는 국토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고 전통적으로 농업을 중시하는 나라. 아름다운 숲과 나무에 둘러싸여 사는 캐나다인은 느긋하고 자연친화적인 국민성을 지녔다. 힘세고 낙천적인 선량한 농부야말로 캐나다의 전형적인 ‘보통사람’이다.

고색창연한 건물과 초현대식 빌딩이 뒤섞인 오타와의 거리에는 요즘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정부가 시내 곳곳에 설치한 ‘키오스크(민원서류 발급기)’앞에서 서류를 발급받는 시민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전자우편주소를 기록한 명함은 이미 ‘필수’가 됐다.

캐나다 정부는 촘촘한 통신망에 정보를 실어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가정까지 배달하는 ‘정보고속도로 건설’에 힘을 쏟고 있다. 1페니 짜리 우표 한 장으로 전국 어디든지 편지를 보낼 수 있었던 영국이 18세기 산업혁명을 주도했듯이, 앞으로는 가장 빠르고 값싸게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나라가 21세기를 주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94년부터 종합정보통신망(ISDN) 케이블TV 무선통신 위성통신을 적절히 배합해 정보고속도로를 건설해온 캐나다는 21세기 정보선진국행 티켓을 확보해 놓은 나라.

캐나다의 인터넷 인구는 97년말 현재 4백33만명. 인구가 훨씬 많은 프랑스와 독일을 앞질렀고 미국 일본 영국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연결한 ‘학교망’을 2000년까지 ‘교실망’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각 지역의 인터넷 접속센터도 지금의 2배인 1만개 이상으로 늘려 영국과 일본마저 추월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국민들의 정보화 수준에 있어서도 이 나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혼란을 일으킨다는 ‘밀레니엄버그’에 대해서도 캐나다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정부가 개설한 홈페이지 ‘SOS2000’(strategis.ic.gc.ca/sos2000)에 들어가 보면 밀레니엄버그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부터 밀레니엄버그 해결방법과 관련 전문회사 명단, 관련 단체를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데이비드 멀캐스터 캐나다 산업청 정보통신기술국장은 “정부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이곳에 들어가보면 밀레니엄버그 때문에 생긴 고민을 말끔히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캐나다는 사실 정보고속도로의 후발주자였다. 90년대 중반 PC보급율과 인터넷 접속자수를 기준으로 본 캐나다의 정보화 수준은 G7 국가중에서 꼴찌였다. 연구소와 산업단지, 학교를 묶는 ‘카나리(CANARIE)’ 프로젝트가 92년부터 진행됐으나 성과가 시원치 않았다.

94년 봄 산업청 주도로 ‘정보고속도로 건설 자문위원회(IHAC)’를 구성했다. 당시 이 위원회의 화두는 ‘캐나다의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어떻게 정보고속도로 건설을 가속화하는가’였다.

IHAC는 캐나다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존하면서도 신기술의 혜택을 수용할 수 있는 방법론에 주력했다. 그러기 위해 정보통신과 컴퓨터 전문가 뿐 아니라 문화 예술 교육계 인사와 소비자 노동조합 대표들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1년반에 걸친 조사작업 끝에 IHAC는 무려 3백 개의 제안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내놓았고 이를 기초로 정보고속도로건설 실행계획을 완성했다.

캐나다 정부는 ‘열린 정부’란 구호 아래 정부 간행물과 법규정은 물론 공공기관의 살림살이까지 샅샅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구축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공공기금과 개인 기부금을 합쳐 인터넷 무료 접속센터 ‘프리넷’을 설립해 시민들에게 다양한 지역정보를 제공했다. 경제단체들은 기업이 멀리 떨어진 고객에 접근해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가상쇼핑몰 건설에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캐나다 정부가 보수적 성향의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은 눈여겨볼 만하다.

네트워크 보안이나 해킹 문제로 홈뱅킹을 꺼리는 사람을 겨냥해 시중 은행들로 하여금 차별화된 인터넷서비스를 실시하도록 독려한 것이 좋은 예.

금리가 워낙 낮은 캐나다의 은행들은 좀 과장을 하면 고객에게 이자를 내주는 대신 보관료를 챙겨온 셈.

거래은행을 직접 찾아가 현금인출을 할 때도 잔고가 일정액 이하이면 75센트를 내야 하고 개인수표를 발행하려면 1달러, 보증수표나 보증환어음은 더 비싼 수수료를 물어야 했다. 이런 캐나다 은행들이 요즘은 대부분 24시간 인터넷 창구를 무료로 열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뒤늦게 정보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했지만 국민성과 현실 여건을 감안한 적절한 실천계획으로 다른 선진국을 추월하고 지금은 21세기 정보화 선진국으로 앞장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다.

〈오타와〓정영태기자〉ytce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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