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년 동안 일본에서 어떻게 한국의 성(姓)씨를 지니고 살았으며, 가업(家業)을 이어 왔을까? 심씨는 4백년만의 ‘귀향보고회’를 갖는 벅찬 감동과 심수관가 4백년에 얽힌 이야기를 소상히 전했다.
이종석〓6일 개막식이 성대하게 끝난 것을 축하드립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참석했는데 감회가 어떠셨습니까.
심수관〓상상할 수 없는 하루였습니다. 대통령이 온다는 것은 한국 국민 모두가 환영한다는 뜻인데….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이〓4백년은 정말 장구한 세월입니다. 그 4백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심〓4백년제는 아버님인 13대 심수관의 염원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병상에서 “앞으로 33년이 지나면 선대가 일본에 건너온 지 4백년이 되는데 그때가 되면 선조들이 이 나라(일본)에 와서 겪은 애환과 시련, 괴로움을 위로하는 제를 올려주기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왔습니다.
이〓한국인들은 심수관가가 조선의 성씨를 계속 쓰고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왔다는 점에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심〓자기 몸 속에 흐르고 있는 피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버지로부터 “너의 피는 한국의 피다. 그러니까 한국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늘 듣고 자랐습니다.
이〓이번 도예전에서 선보이는 초대 심당길(沈當吉)의 망건과 일본에 끌려갈 때 가져간 소설 ‘숙향전’외에도 선생의 자택 부근에 있는 단군을 모시는 사당 옥산궁은 4백년 내내 한국인의 민족혼을 불사르겠다는 결의의 표현으로 생각합니다.
심〓그렇습니다. 조상들이 한국인의 피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길을 다졌고 후대는 그 길을 따라갔던 것이지요. 한번은 일본의 문호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가 제 집에 와서 4백년간의 작품을 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네 선조들은 심장이 두개 있군요. 하나는 바다 건너 한국을 생각하는 심장과 또 하나는 일본속에서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심장말입니다.”
이〓선생께서 1965년 한국에 처음 와 심씨의 집성촌인 경북 청송에 갔을 때의 감동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듣고 싶습니다.
심〓청송에 가서 성묘길에 나섰을 때 뒤를 보니 심씨 친척들이 개미처럼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 행렬이 대지의 끝, 아니 지구의 끝까지 뻗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일본에서는 늘 쓸쓸하고 망향의 정에 젖어 있었는데 지금은 내 친척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고 뭉클했습니다.
이〓청송 심씨 집안은 조선시대 명신(名臣)들도 많았고 양반 가문으로서 손꼽힙니다.
심〓심씨 종친회에 참석했을 때 집안 어른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우리 집안은 양반 가문인데 너희는 일본에 가서 도자기를 굽느냐. 그것도 한해 두해도 아니고 4백년이나 긴 세월을”.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어쩔줄 몰랐습니다. 한 직업을 14대 이어온 것은 서양 같으면 작위를 받을 만한 일일텐데요.
이〓직업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심〓이번 전시 작품에서 어떤 점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도자기의 기본 품격은 대단합니다. 다만 어느 시대부터 상당히 일본화되어 우리 도예와는 거리감이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의 문화 풍토가 낳은 소산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심〓그렇습니다. 도자기는 그 나라의 문화와 풍토를 등에 업고 만들어집니다. 일본에서 한국 도자기와 똑같이 만들려고 애썼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은 사족(士族)의 예우를 받았습니다. 그 예우를 흡족하게 생각했으면 귀화를 했음직도 합니다만.
심〓돈과 안락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인간은 반드시 꿈과 뜻이 있어야 합니다. 선조 도공들은 먹고 사는 데 급급했던 게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민족적인 긍지를 갖고 살았습니다.
이〓선생께서 성장하던 시기는 일본군국주의시대와 전후 패전기, 즉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때인데 혹시 심한 고통을 받지나 않으셨는지요.
심〓한일간의 친선을 도모해야할 시점에서 유쾌하지 않은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당시 정상이 아니었던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단련시켰고 그것이 한국을 다시 인식하고 사랑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정리〓허 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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